조국을 위한 기도. 2025년 3월

3/9/2025 시애틀 드림교회 주일예배, 기도 조유신 형제님

주여 주여, 어찌해야 하나요? 지난 날의 감사도 희망도 밟혀버린 이 광장에서 엄마잃은 아기처럼 주여주여 소리쳐 부릅니다. 억울하고 분한 이 마음, 가장 아끼던 것을 빼앗긴 아이의 심정처럼 울분이 터집니다.

이스라엘의 아합왕보다 더한 악 앞에서 우리는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의 무당과 싸울 엘리야 선지자가 없습니다. 그저 저 바알과 아세라의 성전앞에 줄을 서서 환호하고 춤추는 정신 나간 자들만이 넘쳐납니다.

죄악에 눈을 감고 불의에 박수치는 저들을 벌하시옵소서. 더이상 한국교회에 마른 가지에 희망을 두지 마시고 그룻터기를 잘라 땔감으로 쓰십시오. 주여, 저 바알과 아세라의 무리들을 쓸어버리시고 새로운 씨앗을 심어 다시 시작하게 하소서.

그 나무는 더이상 아무 열매도 맺지를 못하옵나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그들의 혓바닥을 뽑아버리시고 그들의 탐욕의 눈을 멀게 하시어 그들 스스로 지옥의 불속으로 뛰어들기를 원하옵나이다.

예루살렘을 돌위에 돌도 없이 무너뜨리신 하나님, 이 악한 세상에 다시 주의 심판이 임하기를 원하옵나이다. 더이상 약자의 편에 서지 않고 주의 이름을 망령되게 외치며 무고한 자의 죽음 앞에 침묵하는 이 세계 모든 자들이 주의 심판대에 서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오로지 주님 만이 온전히 영광받는 새 세상이 오기를 주여 기도합니다.

분열과 울분과 탄식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용기와 믿음과 지혜를 허락하시고 용서와 평화와 사랑이 주안에서 영원하기를 원하옵나이다.

우리의 기도가 부디 주의 전에 닿기를 간구하오며 우리의 영원한 중보자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죄를 사하는 제사장 그리스도

제 21 조: 그리스도의 속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서약을 통하여 된 멜기세덱의 반열을 따라서
영원하신 대제사장임을 믿는다.
그리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을 성부께 드리시고
선지자들이 예언한 바와 같이,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하여
그의 귀하신 피를 흘리심으로
성부의 분노를 충분히 만족시키셨음을 믿는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 함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에게 징계가 내려졌다.
그는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았으며
“악인”들과 함께 계수되었으며46
본디오 빌라도가 그는 죄가 없다고 공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죄인으로 정죄를 받았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빼앗지 아니한 것을 물어주었으며47
그의 몸과 영혼 모두를 통하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48
고난을 당하셨다.
그가 우리의 죄 때문에
무서운 처벌을 감당하실 때에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으며49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셨다.50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이 모든 고난을 당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고51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임을 안다.52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으로부터 모든 위로를 얻으며,
그리스도께서 이미 치루셔서
성도들을 영원히 완전하게 만든
이 유일한 희생 이외에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화해할
다른 어떠한 방편을 찾거나 만들 필요가 없다.
이러한 이유를 따라서
하나님의 천사는 그를 예수, 즉 구세주라 불렀는데,
그것은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의미이다.53
46 이사야 53:4-12
47 시편 69:4
48 베드로전서 3:18
49 누가복음 22:44
50 마태복음 27:46
51 고린도전서 2:2
52 빌립보서 3:8
53 마태복음 1:21BACK TO TOP

히브리서 읽기

히브리서 10장 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히브리서는 한자리에 앉아서 통독하면 더 좋은 책이다. 13장을 통독하는데 한시간 정도 걸린다. 다른 책과는 달리 호흡이 길다. 1장과 2장에서 진리를 이야기하고 3장에서 비로소 적용이 나온다. 그다음에 한 두장 길게 서술한 뒤에야 적용이 되므로, 호흡이 길며, 인내심을 갖고, 끊지 않은 채 읽어야 논지를 따라갈 수 있다.

장별로 내용을 요약하면 대략 이렇다.

1장 천사보다 크신 이
2장 낮아져 시험받은 제사장, 속량
3장 적용- 죄를 이기고 끝까지 붙잡으라
4장 적용- 은혜 앞으로 나가자
5장 레위인 아닌 멜기세덱 파 대제사장
6장 적용- 단단한 것 먹도록 성숙하라


7장 영원전부터 계신 제사장,
더 좋은 새언약
8장 율법은 하늘언약의 모형
9장 자기 피로 영원히, 단번에, 속죄하심
10장 단번에 드리신 새언약
적용- 휘장 가운데 들어갈 담력을 얻었으니 신앙생활에 힘내자

11장 믿음의 선배들

12장 적용- 힘껏 달리며 예수를 바라보자. 징계 받아도 낙심하지 말자.

13장 삶과 찬송으로 제사 드리자

    제사장 예수님이 하신 일

    특히 예수님에 대해 히브리서 10:12에서 강조하는 것은 세 가지다. 히브리서의 중심 내용이라 할 수 있다.

    한, 영원한, 제사 / all time a single sacrifice for sins
    예수님께서 드리신 제사는 영원히 효력을 미치므로 한번만 드리면 충분하다.

    우리의 제사장이신 주님은 자신의 몸을 제물로, 자신의 몸을 찢어 여신 성전에서, 자신 자신이 중보하는 제사장이 되어 우리 죄를 용서하는 제물로 드리셨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약의 여호수아, 호세아, 여수룬과 같은 이름인데, 구원자라는 말이다. 특히 우리는 예수님이 ,참제사장이 되어 율법의 제사의식의 내용과 목적을 다 충족시키는,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자임을 알게 된다.

    나를 위해 행하신 화목 제사

    이천년 전 속죄는 과거의 일이 아니고, 현재도 우리를 구원한다. 그의 십자가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옛날 일이란 이유로 오늘 또 다시 희생해달라고 하면 안된다. 그 사건을 믿고 우리의 구원의 길로 삼아 제자의 삶을 감사함으로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주님의 십자가의 구원을 통해, 믿음의 선배들을 본 받아, 한 걸음 내딛을 힘을 얻는다.

    (히 12:1-3)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십자가 공의와 사랑 20조

    제 20 조: 그리스도의 안에 보이신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하심
    완전히 자비로우시고 동시에 매우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시어
    불순종할 수 있는 인간의 본성을 취하게 하시고,
    그의 가장 무서운 고난과 죽음을 통하여
    그의 인간 본성으로 죄의 처벌을 감당하게 하셨다.
    그의 아들로 우리의 죄를 감당하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에게 자신의 공의를 나타내셨다.
    그리고 정작 죄인되어서 멸망을 받아 마땅한 우리에게는
    가장 완전한 사랑을 가지사
    자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주시어 죽게 하시고,
    우리가 죽지아니하고 영생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에게 칭의를 허락하기 위하여
    그 아들을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리심으로
    자신의 선하심과 자비를 부어주셨다.

    십자가형의 고정 고증 고통에 대해 생각해보자.

    고증


    평화롭게 달린 예수님의 십자가는 오해다.
    십자가는 로마 흉악한 죄수에게 가하는 강력한 처형 방법이다.
    유명한 검투사 노예들의 반란을 이끌던 스파르타쿠스와 반란 노예 5천여명이 십자가형을 받았다. 아피아 도로끝 까지 10미터 간격으로 매달았다. 처형이면서도 위협 및 전시효과가 컸다. 조선에서 효수형이 있다. 머리를 잘라 성문에 매다는 것과 같다.
    로마시대 무덤에서 십자가 처형 때 박았다가 뽑히지 않아서 뼈에 못이 박힌 채로 매장한 유골이 발굴된다. 십자가형의 흔적이다.
    십자가 형틀의 종류도 T, +,x 모양으로 다양했다.
    물론 넓은 제국이므로 처형자 맘대로 십자가 형의 종류와 방법과 절차는 달랐다. 처형집행자의 습관과 관행에 따라 방법이 달라진다.

    고정

    그러나 고정하는 방법을 생각해보면 어떤 식으로 예수님이 달리셨는지 상상할 수 있다.
    하체와 상체만 다루자.
    발가락 사이에 두 발을 겹쳐서 고상하게 박은 것이 아니다. 두 발이 허공에 떠있어서는 몸의 체중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상상은 발 받침대가 있었다고도 한다.

    못하나로 발을 박을 경우 고정이 문제다. 고통에 몸부림쳐서 발가락이 찢어지고 못에서 빠져나오면 낭패다. 발이 빠지면 몸무게로 팔도 빠져서 몸이 땅으로 떨어진다. 십자가형을 받은 죄수는 반드시 십자가에서 죽어야 한다. 이것이 형집행자의 의무다. 피범벅이되어 떨어진 죄수를 다시 매달려면 몹시 힘들고 귀찮다. 대신 발뒤꿈치 복숭아 뼈 바로 밑에 못을 박으면 튼튼하게 고정된다. 발뒤꿈치에 못이 박힌 유골이 여럿 발굴되는 것도 여러 방식중에 이런 방식이 적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예수님의 뼈가 부러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출애굽기 유월절 어린양을 먹으며 뼈를 부러뜨리지 않는 이유가 나중에 예수님의 처형에서 뼈가 상하지 않는 것으로 연관지어 이해했다.
    즉 발뒤꿈치에 못을 박으면 뼈가 상한다. 그러므로 발가락 사이에 못을 박고 대신, 발 아래 발받침대를 대는 방식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보아도 좋겠다.

    상체는 양손에 못 두개를 박은 것으로 상상한다. 그런데 고정이 쉽지 않다. 손바닥에 박으면 몸무게로 인해 손바닥이 찢어지고 몸이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팔을 줄로 묶는 방법을 생각한다. 줄로 단단히 묶으면 못은 거들뿐이다.
    손에 못이 박힌 구멍이 있으므로, 못을 박기는 했을 것이다만, 밧줄로 팔을 묶었을까? 처형인에게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못 두개로 확실하게 고정하는 방법이 있긴하다.
    그것은 팔목뼈 두개가 모이는 지점을 밖는 것이다. 그러면 뼈도 부러지지 않고, 손바닥이 아니라, 손목에 밖는 것으로 상체가 단단히 고정된다.

    고통

    손목은 신경다발이 지나가는 곳으로 다치면 매우 아프다. 팔뒤꿈치를 부딪치면 고통스러운데 그것과 같다. 단지 그 신경다발을 집게로 집어서 짖이긴 다음에 집게를 비트는 정도의 심한 고통이 더 할 뿐이다.
    처형자에게는 쉽고 간편하며, 죄수에게는 고통을 안겨주므로 처형의도에 부합한다.

    십자가에 매달아 두면 결국 죄수는 죽는다. 진이 빠지고 피를 흘려 죽는 것이 아니라, 질식사다. 매달린 죄수는 고통속에서도 숨쉬기 위해 발에 힘주고 상체를 들어올려 숨을 들이 마신다. 몸이 쳐지며 숨을 내쉰 다음에 다시 발에 힘주고 숨을 들이 마셔야 한다. 이 과정이 고통스럽다. 결국 조금씩 숨이 모자라며 힘이 빠진다. 그러다 들어 올릴 힘이 없으면 질식해 죽는다.
    평소 단련된 건장한 산적두목은 십자가에 달려서도 오래 버틸수 있다. 며칠이고 매달리며 사는 게 고통스럽다. 처형자에게도 이는 골치거리다. 정한 날까지 죽어야 시체를 내리고 퇴근할 게 아닌가.
    그래서 빨리 죽게 하려고, 종아리 뼈를 부러뜨린다. 그러면 몸을 들어올리지 못하고, 숨이 막혀 죽게 된다. 모질게 고통스런 호흡을 계속하던 죄수도 원하던 자비로운 행동이다.

    예수님은 유월절 명절이 시작되는 금요일에 처형되었으므로, 그날 오후까지는 사망해야 했다. 처형집행자는 오후까지 죽지 않을 겨우, 다리를 뿌러뜨리고, 숨이 막혀 죽게 한 뒤에, 시신을 인도하여야 퇴근하여 명절 식사에 참석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예수님은 3시에 이미 숨을 거두셨다. 그래서 다리뼈가 상하지 않고 시체를 모셔다가 매장할 수 있었다.

    십자가의 이유


    문제는 이런 고통스런 십자가를 주님이 지신 이유다.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면서, 우리를 살리려면, 자격 있는 누군가 대신 우리의 죄를 져야 한다.
    우리의 죄 만큼의 벌을 받아야 하는데, 우리 죄의 값은 사망이다.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주님이 십자가의 고통을 받으셨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이 크면 큰 만큼 우리가 받았어야 하는 벌이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

    동시에 십자가는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이다. 그 고통이 크면 클 수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이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 죄 없는 하나님이 이런 고통을 직접 대신 받으시면서까지 우리를 살리셨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보여주는 길이었다.

    요한복음 3: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다고 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다. 멸망과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아들을 세상에 내어주셨다.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기억하자. 그가 우리를 살리셨다.

    제 4 조 정경 The Canonical Books (신약)

    제 4 조 정경 The Canonical Books

    우리는 성경the Holy Scriptures이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곧 구약과 신약으로, 이 책들은 정경이며, 이 사실에 대하여 어떠한 이의도 있을 수 없음을 믿습니다. 이 책들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다음과 같은 이름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의 책들 : …

    신약의 책들 : 4복음서들, 즉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사도 바울의 13개 서신들 즉,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 나머지 7개의 서신들 즉,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1,2,3서, 유다서, 사도 요한의 계시록.

    구약은 5,12,5,5,12 = 39권입니다. 모세오경 역사서 문학서, 긴선지서, 짧은선지서 입니다.

    특히 소선지서를 호욜암, 옵욘미, 나합습, 학슥말로 외우면 구약성경 찾는데 자신감이 생깁니다.

    신약은 5+14+7+1=27입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등 역사서 5, 바울서신으로 불리는 14개의 편지는 롬, 고전후 갈엡빌골 살전후까지는 받는 교회의 이름, 딤전후 딛몬히까지는 받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뒤 7은 편지를 쓴 사도들의 이름을 따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마지막은 신약의 예언서인 요한계시록입니다.

    신약성경의 목록을 외우려면, 먼저 4 복음서인 마막눅요를 기억하십시오.

    그 다음 편지들은 갈엡빌골, 딛몬히약을 기억하십시오. 이 비교적 짦은 편지들을 기억하면 신약성경의 순서가 손에 잡힙니다. 갈엡빌골 앞과 뒤에는 편지를 두번 보낸 ‘전후’서가 있습니다. 고린도전후, 데살로니가 전후가 감싸고 있습니다. 딛몬히약도 앞에는 디모데전후, 뒤에는 베드로전후가 감쌉니다. 그 뒤로 요한123, 유다서, 계시록 하면 끝납니다.

    (벧전 2:1-2) 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벧전 2:1-2) 1 So put away all malice and all deceit and hypocrisy and envy and all slander. 2 Like newborn infants, long for the pure spiritual milk, that by it you may grow up into salvation–

    신령한 젖은 성경말씀인데, 아이를 키워보면 하루 세번도 부족하고, 매 2시간 마다 젖을 갈구하는 아이처럼 사모하라는 강조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사람의 행동과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읽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을 보내셔셔 죄인이 깨닫고 돌아오게 합니다. 우리는 자기 힘으로 복음을 전하려 하지 말고 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말씀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면 이미 구원을 얻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성경말씀은 구원을 주시려는 말씀이지, 어떤 차를 사야할 지, 어떤 대학에 가야 할 지를 결정해 주는 책이 아닙니다. 성화의 과정을 걷는 신자가 매일에서 선택과 결정하고 남은 생애동안 신자가 이웃을 사랑하려면, 학교에서 배우고 신문을 읽어야 합니다. 비로소 우리는 현재 처한 상황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자들이 한손에 성경과 한손에는 신문을 들라고 한 이유입니다. 말씀으로 구원을 얻고 이를 바탕으로 더 많이 읽고 배우고 노력하십시오. 그렇게 하여 자신이 구원얻는 데서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에 구비된 군사가 되십시오.

    제 4 조 정경 The Canonical Books (구약)

    제 4 조 정경 The Canonical Books

    우리는 성경the Holy Scriptures이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곧 구약과 신약으로, 이 책들은 정경이며, 이 사실에 대하여 어떠한 이의도 있을 수 없음을 믿습니다. 이 책들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다음과 같은 이름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의 책들 : 모세오경,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와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기상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서와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이사야,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신약의 책들 : 4복음서들, 즉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사도 바울의 13개 서신들 즉,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 나머지 7개의 서신들 즉,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1,2,3서, 유다서, 사도 요한의 계시록.

    벨직신앙고백 강해를 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대학생이 된 젊은이들 입니다. 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기독교의 기초를 다시 한번 제대로 짚어줄 필요를 느꼈습니다. 또한 장년들도 다시 한번 정리하고 기억을 새롭게 하고 싶습니다.

    구약 39권은 유대교와 우리가 함께 읽는 성경입니다. 물론 유대교는 이외에 미드라쉬(구약 주석), 미쉬나(구전 성경), 탈무드(실천사례) 등 자료도 참조합니다. 유대교도 이미 히브리어로 된 많은 자료 중에서 어떤 것이 하나님 말씀인지에 대한 합의가 있었습니다.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이후 남은 바리새인이 얌니아 회의에서 39권 정경과 15권의 외경 목록을 정했습니다.

    구약은 타나크, 즉 모세오경인 토라, 선지서인 네이빔(전기선지서인 역사서, 후기선지서인 17선지서), 성문서 즉 문학적인 신앙표현인 케투빔으로 장르를 나누었습니다.

    39권의 이름과 순서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역사서 17권 – (토라)창출레민신, (전기예언서) 수삿룻, 삼상 상하, 왕상 왕하, 대상 대하, 스느에,

    성문서 5권 – 욥시잠전아

    예언서 17권 – (긴 예언서 5) 사렘에겔단, (짧은 예언서 12) 호욜암, 옵욘미, 나합슥, 학슥말

    무식한 것 같아도 이렇게 한 서너번씩 읽으면 외워집니다. 한번 용기를 내어 순서를 다 외워 봅시다.

    불신자들이 생각하듯이 성경은 사람이 모여서 자기 임의대로 정경으로 정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주어질 때부터, 하나님의 영감으로 씌여진 성경은 청중들에게 영감있는 하나님의 말씀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를 수천년간 받았던 유대인들이, 70년 이스라엘 멸망후 온 세상에 흩어진 유대인들에게 신앙지침을 주기 위해 다시 한번 정경의 목록을 정리한 것입니다. 회의에서 정해서 정경이 된 것이 아니라, 교회가 먼저 정경으로 받았고, 회의에서 목록을 정리했다는 순서를 기억하십시오.

    외경도 읽어볼 만 합니다. 당시 페르시아, 그리스 시대 상황을 알 수 있는 참고자료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인 배경을 배우는 유익이 있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여길만큼 감동적인 말씀은 명백하게 적습니다. 어느정도 신앙생활을 하신 분이라면 쉽게 정경 39권과 외경 15권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대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인지 분별할 수 있을까요?

    그 자녀는 아버지의 음성을 분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그 말씀을 듣습니다.

    요한복음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이 말씀을 듣고 공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 그 우리 안의 양이라고 여기셔도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을 읽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는 영혼은 바로 하나님의 것이니, 그의 말씀의 내용도 따르십시오. 아버지의 음성입니다.

    제 3 조 하나님의 말씀 The Word of God

    제 3 조 하나님의 말씀 The Word of God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충동impulse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후서 1장 21절에서) 말한 바대로 성령님의 감동을 받은moved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말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이에 따라,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한 그의 특별한 돌보심special care 안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 곧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명령하셔서 당신의 계시된 말씀revealed Word을 기록하도록 맡기셨으며,1 그는 친히 자기 자신의 손가락으로 율법의 두 돌판을 기록하셨습니다.2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기록들을 거룩하고 신성한 성경holy and divine Scriptures이라고 부릅니다.3

    1 출 34:27; 시 102:18; 계 1:11,19 2 출 31:18 3 딤후 3:16

    성경이 특별계시라면, 대체 이 성경은 무엇인가, 어떻게 쓰였으며, 어떤 책들이 성경인가?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이 질문이 먼저 해결되고 나서야, 성경에서 말한 천지창조, 타락과 구속과 완성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성경의 내용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경은 계시를 기록한 책입니다. 계시하셨다는 뜻은 드러내 보이셨다는 말입니다. 모든 진리가 아닌,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만 골라서 드러내 보이셨고, 그 보여주신 지식을 적은 것이 성경입니다.

    그 책을 기록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성경은 하나님이 쓴 책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쓰기를 통해 우리에게 그 뜻을 밝히신 것은, 모세가 받은 두 돌판에 쓰신 율법입니다. 그외의 기록은 모두 사람이 쓴 것입니다. 정확히는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쓴 책입니다.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성경에 기록하셔서 우리에게 그 뜻을 전하셨습니다. 이를 성경이라고 합니다.

    누구는 성경 저자의 손이 신들린듯 저절로 움직여서 잉크를 찍어서 기계처럼 적어내려갔다고 생각도 했습니다. 어떤 이는 사람이 고민하고 창안하고 짜내어서 소설쓰듯이 캐릭터를 창조하고 이야기를 끌어나간 그럴듯한 소설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성경 저자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그의 삶과 글쓰는 능력과 지적 수준을 사용하시고,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표현방식과 문체로 책을 쓰셨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성경책의 내용속에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성품뿐 아니라 성경 저자의 인격과 성품이 녹아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모든 행동이 주님을 위해 하는 일이며, 또 주께 쓰임받는 하나님의 일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하는 일에는 주님의 성품이 녹아 있습니다. 또한 우리 성품과 기질이 담겨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이 거룩한 하루 하루가 하나님께 올려드릴 때, 우리의 어떤 삶이 녹아있어야 할까요? 한글자 한글자 성경을 기록한 제자들의 마음으로 한시간 한시간을 정성껏 일하며 살며 주님께 드립시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의 숨결로 쓰셨습니다. 하나님이 저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어 그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숨은 곧 성령입니다. 성령님은 성경을 쓸 때 뿐 아니라 교회에서 읽혀서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여질 때도 역사하셨습니다. 그 뒤 성경을 복사하고,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도 성령꼐서 일하셔서 그 감동이 다른 번역 성경을 읽을 때도 똑 같이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그 말씀을 한글이나 영어 성경으로 읽을 때, 우리 마음에도 성령님이 일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영혼에 들려지게 하십니다.

    성령님이 오늘 우리가 말씀을 듣고 읽을 때, 성령님께서 일하실 것을 기대하고, 우리 마음이 뜨거워지고 우리 곁에서 일하시는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는 엠마오 제자들이 경험한 깨닫는 경험을 다시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2조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리시는 방법

    제 2 조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알리시는 방법
    How God Makes Himself Known to Us


    우리는 두 가지 방법을 통해 하나님을 압니다.

    첫째는 우주의 창조creation와 보존preservation과 통치government에 의한 것으로, 이는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서1 그 안에 있는 크고 작은 모든 피조물들은 아주 많은 글자들처럼 사도 바울이 (로마서 1장 20절에서) 말한 바대로 우리를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invisible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power과 신성deity을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게 인도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사람에게 죄를 인정하게 하기에 충분하여sufficient to convict men, 사람이 핑계치excuse 못할 것입니다.

    둘째는 그분의 거룩하고 신적인holy and divine 말씀을 통한 것으로,2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의 그의 영광과 구원에 대하여 보다 더 분명하고도 충분하게dearly and fully 자기 자신을 알리십니다.

    1 시 19:1-4
    2 시 19:7-8; 고전 1:18-21

    신앙적 사유의 첫번째 단계는 철학과 논리학의 구조를 따릅니다. 예수님과 구원과 성령과 교회를 말하기 전에, 대체 우리는 이런 것을 어떻게 알 수있는가? 즉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우주의 진리 대하여 우리 인간이 어떻게 알게 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답해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우리가 받은 은혜를 전하기에 마음이 바쁩니다. 그러나 불신자와 대화하려면 세상의 논리와 철학적 구조에 따라 차근차근 우리 논리를 풀어가야 합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만 묻자. 애시당초 대체 너는 이런 진리를 어떻게 알았다는 거냐?>는 질문부터 답해야 합니다.

    이에 대한 정답은 <하나님이 알려주셔야 우리는 알 수 있다> 입니다. 유한한 사람은 무한한 신의 영역을 감히 엿볼 수 없습니다. 신이 보여주시는 만큼만 알 수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로 보여주십니다. 이는 자연과 성경말씀입니다. 그래서 조직신학의 첫 수업은 <계시>에 대한 것입니다. 신학에선 자연을 일반계시, 성경을 특별계시로 설명합니다.

    먼저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고, 보전하며, 다스립니다. 이 자연을 보면 죄에 물들지 않은 본연의 인간이라면 마땅히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죄인은 자연을 보고서도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눈앞의 자연은 우리가 핑게치 못할 증거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입니다. 성경은 우주의 모든 것을 알려주는 교과서가 아닙니다. 단지,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만큼만 정리한 책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구원에 대해 알게 됩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존재를 처음 인식한 그 순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가 계시고,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처음 들은 날은 언제입니까? 하필 나에게 그 진리를 보여주신 그 은혜는 얼마나 큽니까? 다시 감격하고 감사합시다.

    벨직신앙고백, 1조 우리는 한 분 하나님을 믿는다.

    벨기에 신앙고백 제 1 조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만이 계시다 There is Only One God

    우리 모두는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만only one God이 계시다는 것을 1 마음heart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합니다.2 그분은 단순하시고simple 영적인 존재spiritual Being입니다.3 그분은 영원하시며eternal,4 완전히 이해될 수 없고incomprehensible,5 보이지 않으시며invisible,6 변하지 않으시고immutable,7 제한이 없으시고infinite,8 전능하시고,9 완전히 지혜로우시며,10 공의로우시고,11 선하시고,12 모든 선이 흘러나오는 근원the overflowing fountain of all good이십니다.13

    1 신 6:4; 고전 8:4,6; 딤전 2:5 2 롬 10:10 3 요 4:24 4 시 90:2 5 롬 11:33 6 골 1:15; 딤전 6:16 7 약 1:17 8 왕상 8:27; 렘 23:24 9 창 17:1; 마 19:26; 계 1:8 10 롬 16:27 11 롬 3:25-26; 9:14; 계 16:5,7 12 마 19:17 13 약 1:17

    벨직신앙고백은 1561년 지금의 네덜란드 남쪽 벨직에서 귀도 드 브레 목사가 작성한 신앙고백입니다. 37조의 항목으로 기독교의 진리를 잘 요약했습니다. 종교개혁기 당시 루터, 칼빈은 물론 각 지역의 목사는 각 지역의 언어로 개신교 신앙을 정리하였습니다. 그중 가장 인기를 얻은 개혁교회의 신앙요약이 바로 벨직신앙고백입니다. 장로교회에서는 시간이 더 흐른 뒤에 영어로 작성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받아들입니다. 둘의 내용상 아주 비슷합니다.

    신앙고백 즉 교리의 요약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사람이 만든 인위적인 신학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속성을 말하는 벨직신앙고백 제 1조에서 볼 수 있듯이, 잘 요약된 신조의 표현은 단어 하나가 성경에서 나왔습니다. 이렇게 요약된 신앙의 뼈대를 우리는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여, 스스로 신앙을 확인하고 후대에 전수합니다.

    성경은 재미있지만 신조는 지루하다는 선입견도 오해입니다. 신조는 성경을 요약한 것이므로, 성경이 재미있다면 그 요약도 흥미있게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하나씩 묵상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의 성품 하나하나가 우리의 찬송과 기도입니다. 기도의 첫 머리에 주님의 이름을 부를 떄, 그의 속성을 따라 부르고 그 성품을 의지하여 기도 하십시오. 예를 들면 <영원하신 하나님, 우리는 병과 죽음으로 덧없는 삶을 살지만, 주님의 영원하심으로 우리를 살리시고 영생을 허락하옵소서. 우리가 오늘 하는 일도 덧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님 앞에서 우리 노력과 오늘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영원히 기억해 주옵소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붇잡고 기도할 하나님의 성품, 불러 아뢸 주님의 아름다운 그 이름을 무엇입니까?

    마 15장, 난제 풀기 – 오병이어와 칠병이어

    마태복음 14장 15-21에는 오병이어 기적이 나온다. 오병이어 기적은 마태 14장은 물론 마가복음 6장, 누가복음 9장과 요한복음 6장에도 나온다. 네 명의 제자들이 기억하고 빼놓지 않고 기록할 만큼 이 기적은 진짜 있었던 사실 같다.

    그런데 마태복음 15 29-39장에는 칠병이어 기적이 나온다. 마가복음 8장에도 나온다. 두 사건이 빵의 갯수도 다르고 먹인 사람도 5천이 아니라 4천이다. 남은 부스러기도 12광주리와 7광주리다. 행한 장소도 갈릴리 유대인 지역과 데가볼리 이방인 지역으로 다르다. 즉 갈릴리 동쪽과 서쪽이다.

    신학교에선 이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네가지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1. 원래 둘 다 없었다. 이건 무신론자의 비방이다. 성경의 기록된 기적을 인정하지 않는 방식은 받아 들일 수 없다. 기적을 다 빼고 신비를 제하면, 종교 행위와 심리적 위로만 남을 뿐이다. 생명의 기독교는 만날 수 없다.

    2. 한 번만 있었지만, 제자들이 착각해서 두 번 기록했다. 두 사건의 정황이 아주 비슷하다. 많은 사람들, 적은 음식, 풍성히 먹은 기적, 남은 음식을 바구니에 담은 것. 같은 사건을 두 번 기록한 것이다. 그러려면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네 제자들이 모두 착각해서 적었다고 가정해야 하는데 이를 해결책이라고 보기 쉽지 않다.

    3. 더 그럴듯한 해석은, 비슷한 기적이 두 차례 있었다. 한번은 오병이어로 5천을 먹이고 또 한번은 칠병이어로 4천을 먹이셨다. 누가 요한은 오병이어만 기록했고, 마태와 마가는 칠병이어까지 기억해서 오병이어와 함께 기록했다. 왜 제자들이 기록이 혼선을 빚는지 대답이 궁하다. 초대교회 신자들이 이런 서로 다른 복음서를 읽으며 혼란을 어떻게 정리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만약 문자적으로 예수의 일생을 복원하는 도구로 복음서를 읽었다면, 넷 중에서 가장 정확한 복음서를 선택하느라 매우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더 정확한 성경과 덜 정확한 성경이 있는 셈이니, 성경 66권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믿는 것이 아니게 된다.

    4. 또 다른 대답은, 오병이어와 칠병이어 사건 같은 기적은 더 많이 있었다. 요한복음 마지막에서 요한은 예수님의 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지만 다 기록하지 못했다고 한다. 만약 다 기록한다면 그 기록이 넘쳐서 이 땅에 쌓을 곳이 없다 한다. 고치신 병자의 수가 헤아릴 수 없고, 오병이어 같은 기적도 한번이 아니라, 두 번 혹은 오병이어 칠병이어 십병구어 등 여러 번 있었지만 다 기록하지 못했다는 해석이다. 차라리 이게 우리 신앙경험과 유사하다.

    우리 삶에 기적이 온다. 그런데 정황이 비슷하다. 간만에 찾아온 평온, 그러다 갑자기 생기는 위기상황, 수습이 안되는 절망감, 하나님께 드리는 간절한 기도, 광야에 길을 내시며 물을 가르시는 기적의 하나님, 하나님을 찬양 평화로운 상태. 이것이 반복된다.

    그래서 우리는 오병이어 기적을 경험한다. 그리고 다음에 칠병이어 기적을 경험한다. 다른 사건이지만 결국 같은 패턴이다. 그 다음엔 구병이어, 이십병구어 기적을 만날 것이다. 우리는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지나고, 갈릴리 바다를 걷고, 망했다가 일어서고, 죽었다가 살아난다. 신앙의 여정을 가는 동안 우리는 주님과 함께 기적을 여러차례 경험한다. 같은 패턴이다. 주님이 원하신다. 그러므로 광야에서 굶주렸을 때, 떡을 떼시던 주님을 기억하자. 하나님의 오른팔을 잊지 말자.

    마 16장 8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으므로 서로 논의하느냐 9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10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마 15:32-39) 3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33 제자들이 이르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가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35 예수께서 무리에게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36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37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38 먹은 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39 예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마가단 지경으로 가시니라

    마 15장, 예수는 이방인을 배척하셨나?

    이방 여인 하나이 와서 귀신들린 딸을 고쳐달라 했을 때, 예수님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 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 즉 내 소명이 아니라고 대번 거절하신다. 심지어 ‘개들도 부스러기는 먹지 않느냐’는 거듭된 간청을 듣고 나서야 고쳐 주신다.

    여인은 지나치게 비굴하고, 예수님은 전에없이 쌀쌀맞다. 왜 그러실까?

    원래 예수님은 낮은 자와 함께 하셨다. 어린 주님은 말 구유에 눕히셨고, 동방의 이방 점술가와 들판의 낮은 목자들이 와서 경배했다. 변두리 나사렛에서 자라셨고, 제자들은 어부와 세리였다. 주님은 부자 권력자가 아닌, 병자와 여인들, 죄인과 함께 하셨다. 이것이 주님의 행동의 전형이었고, 이런 비주류적인 모습은 당대 주류 유대인에게 큰 충격이 되었다.

    그런데 왜 주님은 하필 이 비주류 여인의 부탁은 들어주지 않으셨을까? 주님은 우선순위에 대해 말씀하신다. 3년 이라는 짧은 시간에, 주님은 제자를 만나 훈련시키고 복음을 선포하시며, 십자가를 지셔서 인간의 죄를 갚아 구원의 사역을 이루셔야 했다. 부족한 시간 중에,온갖 병자를 고치며 메시야인 표적을 보여주시기 위해 병자를 고치셨다. 병원을 차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구원하시려 오셨다.

    구원의 우선 순위가 있다. 집중해야 할 사역이 있어서 거부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고쳐주신 것을 기억하자. 이 여인 뿐 아니라, 로마 백부장의 기도도 들어 주셨다. 백부장의 기도는 그의 종을 고쳐달라는 것이었다. 로마 이방인, 압제자 백부장, 그의 종의 병을 고치셨다. 사실 병자에게 손을 대는 것, 안식일에 고치시는 것, 사마리아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조차 터부시 되던 행위였따. 그럼에도 주님은 약자들을 가까이 하셨다. 이렇게 자상한 분이 시지만, 하나님의 일을 하는 때에, 단지 전략상 이유로 먼저 유대인들과의 대화에 집중하신 것이다. 이방인 전도는 오순절 후 오신 성령님과 함께 하는 제자들의 할 일이었다.

    당시 상황을 다 고려하지 않고, 마태복음 15장 24절만 보고 쌀쌀맞은 예수님이 이방 여인의 간청을 물리치셨다고 오해한다. 예수님의 사역과 이스라엘의 사정을 살피면 오해가 풀린다. 사람들은 바울도 이런 식으로 오해한다. 여성들더러 교회에서 잠잠하고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했다며 이는 바울이 여성의 인권을 무시한 것이라 바울을 성토한다.

    그러나 2000년 전, 시골 나라에서 여성인권, 노예해방, 빈부격차해소, 환경보호는 너무 먼 이야기다. 예수님과 바울의 소명과는 동떨어진 주제였다. 사실 중동은 지금도 여성의 인권이 보호받지 못한다. 노예해방, 여성인권이 보장된 것은 미국에서조차 불과 100년이 채 되지 못했다. 예수님 이후 1900년동안 거의 모든 남자들이 남성우월론자였고 인종차별주의자였다. 그런 세상이었다. 역사적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예수님과 바울을 성토하는 것은 부당하다.

    비록 복음이 소개된 곳에는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고, 노예가 해방되고, 가난한 자가 존중받고 심지어 동물의 생명을 존중하는 유익이 나타난다 할 지라도, 이는 복음의 부수적 효과다. 먼저 복음이 전해져야 이 유익이 나타날 수 있다.

    예수님과 바울의 소명은 먼저 하나님의 복음을 이 땅에 전하는 것이었다. 핍박받는 교회를 세욱고, 지키며, 가르쳐서 이 땅에 복음을 전하는 굳은 신앙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사도의 소명이었다. 사도가 소명 외의 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고 비난 하는 것은 부당하다.

    교회의 우선순위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이 땅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인 신앙 공동체를 이곳에 세우는 것이다. 복음을 선포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며, 신자들을 교육하고 훈련하여 성장하게 한다. 불신자들의 곁으로 다가가 필요를 채우고 복음을 전하고 위로한다. 이 과정 중에 당연히 좋은 영향이 미칠 수 있겠다. 환경이 개선되고, 격차가 해소되고, 혜택이 많지 받지 못한 사람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교회의 우선순위는 복음전파와 하나님 나라의 일에 힘쓰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때로는 사양할 줄 알아야 한다. 우선순위에 먼저 집중하자. 내가 생명 안에 거하고, 가족이 살고, 이웃을 섬기며, 더 넓게 영향을 미쳐가는 순서다. 먼저 가까운 이웃에게 우리의 존재가 생명과 기쁨이 되게 하자. 그 후에 더 많은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돕는자가 되자. 할 수 있는 대로, 하나님의 명을 따라, 힘 닿는 대로 주의 나라와 이웃을 섬기자.

    (마 15:21-28) 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