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만달란트 탕감 받은 종에 대한 설교 예화로, 바이든이 학자금 탕감해준 것을 들 수 있다. 좀처럼 탕감해주는 일이 없는 미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기 드문 일인데, 탕감받은 자들이 다들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지난 6월 말, 대법원이 이를 위헌으로 판결했다. 좋은 예화거리가 날라갔다.
여하튼 주님이 말로 천국에 대해 말하실 때, 한번 듣고 잊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비유를 사용하시는데, 그 비유 이야기에서 강조법과 과장은 필수다. 한사람은 달란트를 빚지고 한 사람은 데나리온을 빚졌다. 탈란트는 금 20kg인지 30kg인데 무게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만져 본적이 없다. 그 금덩이를 일만개나 빚졌다. 한사람은 하루 품삯인 데나리온을 백개 빚졌다. 중요한 것은 달란트 대 데나리온, 일만 대 백, 어마무시하게 큰 것과 적당히 작은 것이다. 논점은 명확하다.
엄청난 것을 탕감받은 사람이,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적당히 빚진 자를 용서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임금이 화를 내는 이야기다. 주님은 이를 용서와 연결시킨다. 복음을 듣고 크고 죽을 죄로부터 구원받은 사람은, 이 땅에 살면서 작은 죄를 지은 형제를 용서해주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기독교인이면서도 이게 잘 안된다. 백데나리온, 하루 일당의 백배는 천만원쯤 될까? 용서해주기 쉽지 않은 금액이다. 이 때 우리가 탕감받은 수백억을 생각하지 않고 용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악한자다.
용서는 어렵지만 해야한다. 우선은 우리를 용서해준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기 때문에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랑이 엄청나게 크고, 우리가 놀라운 죄인이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죄를 지은 형제를 용서해야 한다. 학자금 탕감받을 때 기분 좋았다면, 우리도 가서 형제이 빚을 탕감해주자.
용서하기란 어렵지만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반드시 용서해야 한다. 그러면 용서하는 사람 본인 마음이 평화를 얻고, 주님과의 관계의 장애물을 치우게 된다. 나를 위해, 그리고 나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마음에 부응하기 위해 용서하자. 내게 잘못한 형제를 봐주고, 기회를 더 주자.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많이 참고 기다리셨다.
(마 18:21-35)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23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26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32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