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8:21-35, 용서는 어렵지만 탕감은 기분 좋아

일만달란트 탕감 받은 종에 대한 설교 예화로, 바이든이 학자금 탕감해준 것을 들 수 있다. 좀처럼 탕감해주는 일이 없는 미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기 드문 일인데, 탕감받은 자들이 다들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지난 6월 말, 대법원이 이를 위헌으로 판결했다. 좋은 예화거리가 날라갔다.

여하튼 주님이 말로 천국에 대해 말하실 때, 한번 듣고 잊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비유를 사용하시는데, 그 비유 이야기에서 강조법과 과장은 필수다. 한사람은 달란트를 빚지고 한 사람은 데나리온을 빚졌다. 탈란트는 금 20kg인지 30kg인데 무게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만져 본적이 없다. 그 금덩이를 일만개나 빚졌다. 한사람은 하루 품삯인 데나리온을 백개 빚졌다. 중요한 것은 달란트 대 데나리온, 일만 대 백, 어마무시하게 큰 것과 적당히 작은 것이다. 논점은 명확하다.

엄청난 것을 탕감받은 사람이,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적당히 빚진 자를 용서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임금이 화를 내는 이야기다. 주님은 이를 용서와 연결시킨다. 복음을 듣고 크고 죽을 죄로부터 구원받은 사람은, 이 땅에 살면서 작은 죄를 지은 형제를 용서해주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기독교인이면서도 이게 잘 안된다. 백데나리온, 하루 일당의 백배는 천만원쯤 될까? 용서해주기 쉽지 않은 금액이다. 이 때 우리가 탕감받은 수백억을 생각하지 않고 용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악한자다.

용서는 어렵지만 해야한다. 우선은 우리를 용서해준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기 때문에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랑이 엄청나게 크고, 우리가 놀라운 죄인이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죄를 지은 형제를 용서해야 한다. 학자금 탕감받을 때 기분 좋았다면, 우리도 가서 형제이 빚을 탕감해주자.

용서하기란 어렵지만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반드시 용서해야 한다. 그러면 용서하는 사람 본인 마음이 평화를 얻고, 주님과의 관계의 장애물을 치우게 된다. 나를 위해, 그리고 나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마음에 부응하기 위해 용서하자. 내게 잘못한 형제를 봐주고, 기회를 더 주자.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많이 참고 기다리셨다.

(마 18:21-35)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23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26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32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 18:15-20, 징계의 목적

사람이 실수를 할 수 있다. 같은 실수를 두 번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듭하고, 의도적으로 범죄하고, 뉘우치지도 않으면 심각한 징계가 들어가야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회개하고 고치면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 그런 좋은 결과를 위해서 교회가 있다.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거룩한 삶을 살도록 돕는다.

교회의 기능 중 하나가 바로 서로 돕는 것이다. 징계는 이를 돕는 도구이며, 우리가 교회의 일원이 되려고 할 때, 우리는 교회의 징계도 달게 받는다고 약속한다. 징계의 절차를 생각해보자.

먼저 혐의가 있거든, 일대일로 만나서 권면한다. 비밀 상담이다. 만약에 고치면 좋다. 고치거나 혹은 고치지 않을 경우에도 일대일 상담은 비밀로 한다. 물론 목사에게는 보고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비밀상담을 기억하고 비밀을 지켜주어야 한다.

듣지 않으면, 두세명이 함께 간다, 이 때 성숙한 그리스도인 즉 목사나 교회의 장로가 함께 가서 권면한다. 비밀이고 비공식적인 권면이다. 목사는 말 할 수 없는 비밀이 많다. 나는 예화를 들면서 예전의 교인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지만, 최소 10년이상 지난 일, 이미 지나간 일을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여러분과의 상담은 비밀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듣지 않으면, 공식적인 징계를 논의한다. 교회 전체가 아닌 지도부에서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권면을 결정한다. 공식적으로 교회 이름으로 회개를 권한다. 교회의 공식적인 징계는 주로 3~6개월정도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수찬정지’가 있다. 작은 성찬을 먹지 않는 것은 영양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지만, 징계의 상징으로는 큰 의미가 있다. 공개적으로 회개를 촉구하는 상징적 징계다. 이때라도 돌이켜야 한다.

그래도 회개하지 않으면, 출교가 있다. 교회에서 내쫒는다. 사실 교회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좋아할 지 모른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에서 교인을 내 쫓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라도 해서 그를 죄에서 돌이키게 할 필요가 있다.

징계는 그를 부끄럽게 하거나, 모욕 하려는 것이 아니다. 고린도전서 5장에서 말하듯, 육신은 멸하고 영이 구원 얻도록 하는 하나님이 주시는 회개와 구원의 기회다.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기 때문에 사랑하므로 징계한다. 사람의 사랑의 매에는 감정이 실렸지만, 하나님의 사랑의 매는 한없는 사랑과 자비의 기회다. 그의 사랑을 달게 받아 영을 살게 하자.

(고전 5:5)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1Co 5:5) you are to deliver this man to Satan for the destruction of the flesh, so that his spirit may be saved in the day of the Lord.

(마 18:15-20) 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12-14, 낮아져도 괜찮아

살면서 망했다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나는 수학을 잘 못했다. 한국에서 수포자여서, 수학대신 암기과목에 집중하기로 하며 고등학교 생활을 보냈다. 다행히 암기과목 점수가 아주 잘 나와서 대학에 갈 수 있었다. 늘 산수에 자신감이 없었는데 미국 와서 컴퓨터 가게 점원이 가격을 계산해주면서 더하기를 느리게 하는 것을 보고 자신을 얻었다. 한국에선 꼴등해도, 다른 곳에서는 중간 이상일 수 있다. 현재 나의 상황을 절망적으로 보기 전에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자.

사실 고등학교 성적표에 ‘가’가 하나 있다. 워낙 자신있는 암기과목이어서 방심하고 전날 공부를 하지 않았더니 고3때 중간고사에 낮게 나왔다. 암기과목은 하루전에 잠깐 보기만 해도 되는데 그걸 안했다. 기말에 쉽게 100점 맞아서 만회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하필 기말시험때도 잊어버리고 방심하고 그 과목 공부를 하지 않았다. 한시간만 봤어도 되었는데, 잊었다. 결국 그렇게 최하점을 맞았지만, 인생 사는데 지장 없었다. 성적은 별로 큰 문제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첫사랑 실패, 교통사고, 몸의 질병, 시험 낙방, 사업 실패, 관계 문제, 자연재해 등 양이 길을 잃어버린 순간 같은 인생의 고난이 많지만 그것이 완전한 인생의 끝은 아니다. 잠깐 물러서서 생각하면 완전히 망한 것은 아니다. 특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더욱 믿는 구석이 있다.

잃은 양의 비유가 그것을 잘 설명한다. 양이 길을 잃고 방황할 때가 있다. 집을 못 찾고 맹수의 먹이가 될 죽을 운명이다. 그런데 그 때 좋은 목자가 있다. 99마리 양을 넣어두고,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선다. 골짜기 밑바닥에 떨어졌다고 생각할 때도 우리를 찾아 나설 하나님을 기억하자. 나를 찾아와 구원하실 목자가 있다.

다른 성경에는 똑 같은 내용을 잃어버린 동전 비유로 바꾸어 다시 말한다. 동전을 땅에 흘렸으면, 하나하나 다 찾도록 샅샅이 뒤지지 않는가. 동전하나 쯤이야 하고 무시하지 않는다. 떨어지고, 흘리고, 가려져서 안보일 때, 우리를 찾으시는 손길이 있다.

다른 비유로 탕자의 비유가 있다. 둘째 아들이 집을 나갔다. 그러나 아버지는 마을 어귀에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마음을 돌이키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미안해요 아버지 하면, 기쁘게 맞아주실 아버지가 계시다. 즉 우리에겐 언제든 돌아갈 고향이 있다.

주님이 찾으신다, 낮아지고, 실패해도 염려하지 말자. 주님이 찾으신다. 주님의 은혜가 크다. 우리는 양보다 귀하고, 동전보다 귀하다. 하나님이 두 팔을 벌려 우리를 기다리신다. 절망하지 말고 주님께 돌아가자.

마 18: 12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사사기 3장, 왼손잡이 에훗

1. 약속의 땅에서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키지 않고 우상을 섬긴다.
2. 이스라엘의 죄, 하나님의 진노, 이웃나라의 침략, 고통받으며 기도, 구원자를 보내셔 구원하심, 평안함, 다시 죄를 반복함, 이런 사이클이 일곱번 반복된다.
3. 현재 요르단이 된 모압족 에글론 왕의 침략, 18년간 식민지
4. 구원자 에훗의 별명이 왼손잡이
5. 히브리어에서는 왼손잡이를 “이테르 오른손” 즉 오른손을 못쓰는 것으로 표현한다. 정확히는 오른손이 묶였다는 뜻이다. 오른손의 장애가 아닐 수도 있지만, 그 행색이 초라하다.
6. 사회적으로 누주하다. 조공을 거두는 세리, 주저하는 암살자, 거짓말로 기회를 얻는 부역자, 도망쳐서야 협력을 얻는 구원자,
7. 중국역사 오나라와 월나라의 싸움에서 오자서 장군이 범려를 기용하여 원수를 갚은 이야기와 흡사하다. 외모가 건장한 장군은 결코 가까이 접근해서 암살 할 수 없다.
8. 에훗은 약하고 누추하며, 왼손 밖에 없었지만, 몸과 마음이 깨끗하여 주님이 쓰셨다.
9. 하나님이 깨끗한 그릇을 찾으신다.
10. 소망없는 자에게 주님만이 소망이 되신다. 전쟁은 우리 힘으로 하지 않고 주님의 힘으로 한다. 왼손잡이라도 주님이 쓰시면 이길 수 있다.
11. 부족함 없던 귀족 사사 옷니엘이 40년 평화를 가져왔다면, 왼손잡이 누추한 에훗은 80년의 평화를 가져왔음을 기억하자.
12. 우리의 약한 손을 주께 내어 드리면, 강하신 주의 오른손으로 붙드신다.

사사기 3장 12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13 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모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을 쳐서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한지라 1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열여덟 해 동안 섬기니라 1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통하여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칠 때에 16 에훗이 길이가 한 규빗 되는 좌우에 날선 칼을 만들어 그의 오른쪽 허벅지 옷 속에 차고 17 공물을 모압 왕 에글론에게 바쳤는데 에글론은 매우 비둔한 자였더라 18 에훗이 공물 바치기를 마친 후에 공물을 메고 온 자들을 보내고 19 자기는 길갈 근처 돌 뜨는 곳에서부터 돌아와서 이르되 왕이여 내가 은밀한 일을 왕에게 아뢰려 하나이다 하니 왕이 명령하여 조용히 하라 하매 모셔 선 자들이 다 물러간지라 20 에훗이 그에게로 들어가니 왕은 서늘한 다락방에 홀로 앉아 있는 중이라 에훗이 이르되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왕에게 아뢸 일이 있나이다 하매 왕이 그의 좌석에서 일어나니 21 에훗이 왼손을 뻗쳐 그의 오른쪽 허벅지 위에서 칼을 빼어 왕의 몸을 찌르매 22 칼자루도 날을 따라 들어가서 그 끝이 등 뒤까지 나갔고 그가 칼을 그의 몸에서 빼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기름이 칼날에 엉겼더라 23 에훗이 현관에 나와서 다락문들을 뒤에서 닫아 잠그니라 24 에훗이 나간 후에 왕의 신하들이 들어와서 다락문들이 잠겼음을 보고 이르되 왕이 분명히 서늘한 방에서 그의 발을 가리우신다 하고 25 그들이 오래 기다려도 왕이 다락문들을 열지 아니하는지라 열쇠를 가지고 열어 본즉 그들의 군주가 이미 땅에 엎드러져 죽었더라 26 그들이 기다리는 동안에 에훗이 피하여 돌 뜨는 곳을 지나 스이라로 도망하니라 27 그가 이르러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매 이스라엘 자손이 산지에서 그를 따라 내려오니 에훗이 앞서 가며 28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수들인 모압을 너희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매 무리가 에훗을 따라 내려가 모압 맞은편 요단 강 나루를 장악하여 한 사람도 건너지 못하게 하였고 29 그 때에 모압 사람 약 만 명을 죽였으니 모두 장사요 모두 용사라 한 사람도 도망하지 못하였더라 30 그 날에 모압이 이스라엘 수하에 굴복하매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평온하였더라

마 18:1-4  어린아이처럼 겸손함에 대하여

지구가 도는 지동설이 상식이 되기 전 500년 전에는 지구를 중심으로 하늘이 돈다는 천동설을 믿었다. 이런 상식을 모르는 어릴 때는 자동설을 믿는다. 자동설은 모든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돈다는 교만한 생각이다.

가장 교만한 때는, 초등학교 졸업직전 학교에서 학생 중 가장 똑똑한 때다. 또한 중3이 되어 세상을 제대로 알기 바로 직전인 중2때가 가장 교만하다 할 것이다. 교만은 다름아닌, 나를 위해 온 세상이 존재하고, 나를 중심으로, 나를 위하여 세상이 운행된다는 믿음이다.’

사춘기 어린 아이같은 미성숙한 교인도 자동설을 믿는다. 하나님을 창조주, 예수님을 구속주, 즉 주인님으로 고백하면서도, 그 주인이 나를 위해 복을 주어야 마땅하다고 믿는다. 왜 죄인인 내가 구원받는 것이 당연한가? 왜 주인이 그 종을 위해서 어떤 것이든 바라는 대로 공급해야 하는가? 왜 신자가 하나님을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이 신자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기대하는가? 자동설 신자다.

나는 열두 제자이니까, 신자니까, 구세주를 만났으니까 특별하다. 특별하므로,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므로, 함께 하시므로, 내가 가는 길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님이 공급하신다고 약속하셨으므로, 나는 가장 형통하고 부유하고 복 받은 삶을 살아가야 마땅하다고 믿는다면, 그는 교만한 것이다. 하나님이 크므로 나도 크다고 자랑하면 그는 아직 미성숙한 신자인 것이다.

미성숙하고 교만한 제자들이 자기 중에서 누가 큰가를 두고 경쟁했다.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천국 간다고 말씀하셨다. 그냥 어린아이의 순수성을 예찬하신 것이 아니다. 어린이날 설교주제와 관련 없다. 제자들의 교만한 경쟁과 스스로 크다는 교만함을 책망하시는 주님의 말씀이다. 어린아이처럼 겸손하라. 초6이 아니다. 유치원 이하처럼 자기 약함을 알고, 그래서 겸손한 분수를 아는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천국에 간다고 하신다.

약 4: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 Jms 4:10 Humble yourselves before the Lord, and he will exalt you.

스노호미시의 기독교 학교 벽에 크게 적힌 글이다. be humble 겸손하라. 약 4:10. 저마다 잘난 척하고 자기를 내세우라고 교육받는 미국에서 아주 보기드문 교훈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이다.

즉, 자기를 낮추고 겸손한 사람은, 세상이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가 세상을 위하는 것인 줄 아는 사람이다. 예수님처럼 사람들의 종이 되어 세상을 섬기는 종이 바로 천국에서 큰 사람이다. 나를 위해 세상을 조정하지 말고, 세상을 위해 나를 움직여 섬기는 자가 바로 천국에서 큰 자다.

마 18:1-4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마 17:24-27  오해받지 않도록

낚시꾼이 좋아하는 기적이 있다. 마 17장의 기적은 돈을 낚는 기적은 잘 알려지지 않는 기적이다. 성전세 반세겔을 내야 하므로, 베드로를 시켜 낚시하여 물고기를 잡게 한다. 하필 그 물고기 입에 세겔 동전이 물려 있었고, 이를 가져다 성전세를 내었다는 기적이다.

통일교, JMS 이단 등에서는 이를 기적이라고는 믿을 수 없고 대신 비유풀이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베드로가 사람낚는 어부가 되리라는 말씀에서 낚시질은 전도행위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도 베드로가 나가서 한 사람을 전도하였고, 감동받은 피전도자가 기꺼이 한세겔 성전세를 내주었다고 해석한다. 이런 해석을 신박하다고 여기고 이단에 현혹되지 않기 바란다. 주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말 장난일 뿐이다.

풍랑을 잠재우시는 분이 고작 한세겔 물고기 입에서 꺼낼수 없겠는가? 근데 사실 기적보다 중요한 것은 기적을 일으키신 동기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 들어가는데 돈을 낼 이유가 없다. 그러나 주님은 오해 받지 않게 하기 위하여 바다 물고기 고기 입에서 성전세를 꺼내어 내게 하신다. 그리스도인은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의 자녀다. 모든 것이 아버지 것이니, 아들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무것이나 가지고, 아무데나 들어가면 안된다.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땅에선 우리의 행동으로 다른 사람이 실족하거나, 혹은 오해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호텔에 가서는 정당한 돈을 주고 자고, 물건을 살 때 결제하는 이유다. 심지어 다른 교회를 방문해서 장소를 이용할 때도 폐 끼치지 않도록 절차를 거치고 필요한 비용을 내야 한다.

나는 주의 일을 하니까, 당연하게 대접받아야 한다는 듯이 행동하는 경우도 오해할만한 행동이다. 같은 주안의 신자이므로 예의없이 행동하는 것도 폐가 된다. 하나님이 참 신이지만, 절에 가서 무너져라 외치는 것은 종교전쟁을 시작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이 무례한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이 실족했다.

예수님도 이 땅에서 사실 때, 다른 사람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조심하셨다. 이 땅에서 모범이 되신 주님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의 마음에 실망주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며 살자.

다른 사람을 의식하며 사는 일이 쉽지 않다. 힘도 들고 돈도 들어야 한다. 그러나 물고기 입에서 한 세겔을 찾아 주신 하나님이, 매순간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폐 끼치며 살지 않도록 우리를 지키시고, 하나님께서 직접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실 것이다.

마 17: 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마17:1-8  변화산 영광에서 산 아래 세상으로

말씀을 듣고 크게 감명받고 변하였다는 간증을 듣거나, 신앙생활에 전에 없던 열심이 생겨 말씀을 읽게 되었다는 이야기, 고난을 통과한 교인들의 믿음이 생겨 얼굴이 밝아지고, 공동체가 사심없이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주의 영광을 본다. 공동체가 함께 뜨거운 영적 각성을 경험하며 영적부흥을 거칠 때, 이 부흥이 몇 개월간 계속 될 때, 우리는 주의 영광을 보았다.

세 제자들은 산 위에서 주의 영광을 보았다. 하얗고 순결하고, 높고 크고 위대하다. 눈부신 영광과 곁에선 큰 선지자 모세와 엘리야가 이를 증명한다. 구름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사랑하는 아들,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의 말을 들으라, 두려워 말라 하신다.

영광에 둘러싸여 영광을 목격한 베드로는 아예 이곳에 캠핑을 하며 눌러 살자고 제안한다. 천국 같은 곳이니 영원히 머물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이들과 함께 산을 내려온다.

산 밑에는 그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현장이 있다. 산 밑에는 환자가 있다. 고질적인 간질병, 제자들은 고치지 못하는 무능력, 패역한 세대, 우리 현실은 질병, 무기력, 불신, 무능, 패역이다.

우리는 산 위에 영광 중에 머물고 싶지만, 주님은 우리를 현실로 내어 보내신다. 산위에서 한번 그의 영광을 본 사람은 산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산 밑 현장에서도 주님의 영광을 보고, 그 영광을 나누는 것이 우리 사명이다. 패역한 세상에서 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제자의 길을 가자.

(마 17:1-18)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6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7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 14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 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마 16:24-28 십자가의 길

우리는 베드로의 당황을 이해할 수 있다. 기적과 좋은 말씀을 듣고 마침내 신앙고백한 참이다. 그러나 이 때로부터 주님은 십자가에 대해 이야기 하셨다. 주님이 지시고 나중에는 제자들도 질 십자가다.

24절은 전혀 기대하지 않은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내용에선 주를 믿는 것이 목숨까지 내어 놓는 위험천만한 일인가 하며 쫄게 된다. 목숨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알겠는데, 먼저 주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 놓아야 찾게 된단다. 아무리 갚아 주신다고 하지만 날벼락 같은 말씀이다.

신앙은 잔잔한 호수가 물놀이가 아니다. 교회에 처음 가는 날이 내겐 강을 건너는 결단의 날이었다. 평온한 삶이 깨지고 새로운 모험으로 들어가는 구도자의 첫날이었다. 믿음이 생기고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기엔 내 운명을 건 결단이 필요했다. 성경공부도 재미있었지만, 함께 나가서 전도하자고 할 때는 죽을 맛이었다. 창피하고 숨고 도망치고 싶었다. 나중에 신학교로 부르실 때는 한숨 쉬며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갔다. 전도사로 진행한 행사에서 많은 호응을 얻었지만 한 분은 크게 상처받았다고 해서 한동안 힘들었다. 부목사 생활, 개척교회 목사를 하며 정기적으로 환난과 고난을 통과한다. 주로 사람문제다. 생각하기에 따라 죽을 만큼 힘든 일을 종종 만난다. 때론 맘고생이 몸의 질병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목사가 아니었으면 겪지 않았을, 아니 애초에 예수를 만나지 않았다면 당하지 않았을 고난이다. 잘못 믿은 거였나?

예수의 제자가 16장을 넘어가는 과정이 이토록 힘들다. 신앙고백과 세례와, 안수와 어떤 프로그램 수료와 직분과 경험으로 끝이 아니다. 그 이후의 제자의 삶에 따라오는 희생과 섬김 고난과 죽을 정도의 맘고생을 만나야 한다. 이것이 제자들이 짊어질 십자가이며 따라가야 하는 십자가의 길이다.

예수 믿고 날마다 행복, 감정의 고양, 재물의 축복, 가정의 평화를 기대하는 것은 초보신앙이다. 16장 이전이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번영신학, 복을 구하는 기복신앙도 어떤 종류의 신앙일 수는 있지만, 신앙이라고 하더라도 마태복음 16장에 멈춤 신앙이다. 여기서 멈춰서는 안된다. 16장 이후로 성장하려면, 십자가도 져야 하는 제자의 삶을 배우고 받아들여야 한다.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르는 것이 제자의 삶이다. 주님이 십자가 길을 먼저 가셨으니, 제자도 십자가를 져야 한다. 주님이 부활하실 때, 그래야만, 제자도 부활할 것이다.

(빌 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Php 1:29) For it has been granted to you that for the sake of Christ you should not only believe in him but also suffer for his sake,

마 16: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 16장, 고백만으로 충분한가? 영접 그 이후

예수님이 베드로의 고백을 듣자 그 이후부터, 십자가의 구속 사역과 메시야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이 위대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베드로와 제자들이 듣는 순간이었다. 배경음악이 나올만한 극적인 장면이다.

근데 이들이 제대로 알아들었을까? 우리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까? 베드로와 오늘 나는 누가 더 예수님에 대해 잘 알고 있을까? 베드로는 예수님의 체취, 말투 억양 등 신체적 특징과 당시대 상황을 우리보다 자세히 알 것이다. 그러나 2023년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 신구약 성경의 말씀, 예수님의 부활과 재림, 그 뒤의 성령의 사역과 교회 확장에 대해 베드로보다 훨씬 더 많이 안다.

신앙고백은 굉장한 사건이지만, 더 큰 예수님의 사역과 희생에 대해서 베드로는 무지했다. 그러므로 그렇게 하지 마옵소서. 제가 막겠습니다. 하며 호기있게 주님의 뜻에 정 반대로 말했다. 사탄이라고 책망들을 만하다.

초신자들은 감정적으로도 크게 고무되어 방방 뛰지만, 신앙의 연수가 오래된 성숙한 신자들에 비할 바 못된다. 이들의 오랜 신앙생활의 관록은 생동감과 활력은 적어도, 깊은 뿌리와 숱한 경험과 넓어진 안목으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한다.

베드로는 더 알아가야 한다. 28절은 해석하기 힘들다. 적지 않은 제자들은 자기들이 죽기 전에 예수님이 재림한다는 뜻으로 알고 예수님이 100년 전후에 재림하실 것으로 기대하기도 했다.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다는 것과 성령강림의 목격자가 된다는 해석도 있다. 조금 더 가능성 있는 해석은 죽기전에 인자가 하나님 나라에 오신다는 말은 그 영광을 변화산에서 보이는 것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바로 다음 구절인 17장 변화산 사건이 뒤따르기 때문에 일리 있다.

거기서도 베드로는 엉뚱한 소리를 한다. 예수님의 희고 빛난 영광을 본 뒤, (17: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인자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고 대속하여 죽을 것과 부활하실 것을 듣고서도, 산 위에선 그냥 여기 있자고 분위기에 맞지 않는 말은 한다. 신앙고백한지 며칠 되지 않은 초신자 베드로의 한계다.

한편, 우리는 베드로보다 더 많이 안다. 주님의 재림과 더욱 가까워진 우리는 더욱 하나님나라와 가깝다. 즉, 우리도 앞으로 주님의 신비에 대해 더 알아야 할 것이 많이 남았다는 뜻이다. 지금 알고 있는 지식으로 만족하고 교만하지 말고, 더 알아갈 신비를 기대하며 겸손히 주를 따르자.

한때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영접기도하는 회심이 기독교의 중심이자 목표로 여긴 적이 있다. 예수 믿고 천국가는 것만이 기독교의 목표라면, 전도할 때, 지금은 신앙생활을 하지 않지만 한 때 예수를 주로 고백했다고 하면, “아 그러시구나. 천국가시겠군요.” 하면서 물러나 다른 곳으로 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신앙 여정은 회심과 고백에서 멈추지 않는다. 마태복음이 16장을 넘어 28장까지 있듯, 우리 신앙여정은 고백이후 성장하며 하나님의 뜻을 더 알고, 풍성한 은혜를 체험하는데 까지 이른다. 우리는 예수를 주라 고백 한 이후로 더 성장해간다. 산 위의 빛난 영광을 보고, 부활의 영광과 오순절의 영광과 순교자의 영광과 승리하신 재림주의 영광을 볼 것이 앞으로 더 남아있다. 기대하며 따르자.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마 16장, 베드로의 고백,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예수님이 인자에 대해 물으실 때, 사람들은 세례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선지자 중 하나라 한다. 말라기에서 예언하길 메시야가 오기 전에 엘리야 같은 선지자가 올 것이라 했고 신약에서 세례 요한이 그 역할을 맡았으니, 세례 요한, 엘리야, 혹은 선지자 모두 일리가 있다. 예수님이 심판과 회개를 말했으니, 예레미야 선지자라고 볼 수 도 있었다. 사람들은 정답에 근접했지만 틀렸다.

베드로는 주님을 알아 보았다. 예수는 메시야 그리스도시다. 세상의 구세주다. 예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왕과 왕자님을 구분하는 것이 평민에게 의미 없다. 예수님은 영광의 하나님이 보내신 자 일 뿐 아니라, 하나님과 구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이런 복된 고백을 한 것은 인간의 살과 피, 땀과 노력이 아니다. 사람의 노력과 재능이 아니다. 하늘의 아버지께서 베드로에게 이런 통찰력과 믿음을 주셨다. 믿음을 갖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돈으로도 못가고 힘으로도 못 가고 믿음으로만 가는 곳이 하나님 나라다. 이 믿음조차 하나님이 주셔서 믿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도할 수 없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심지어 예수님이 내려 오셔서 만난 사람들이 다 믿음을 가지지 못했다. 하나님이 알게 하신 소수의 복된 사람이 믿었다. 우리도 힘으로 전할 수 없고 주님의 복을 빌 뿐이다. 주님이 택하시면, 누구도 거부할 수 없이 주를 믿고 메시야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된다. 막을 수 없고, 오게 할 수도 없다. 복을 바랄 뿐이다. 복이 내리기를 기도하며 기원한다.

그러면 우리가 기도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가? 사람이 참여할 것을 하나 제시하셨다. 베드로 이 돌덩어리 바위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 하셨다. 이 교회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인다. 음부의 권세를 이길 영광스런 교회를 바로 한 사람의 위에 세우신다 하셨다.

즉, 우리는 자기 힘으로는 신앙을 가질 수도 없는 존재다. 하물며 남을 구원할 수도 없다. 우리는 무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를 세울 수는 있다. 교회에 참여하여 이 작고 연약하고 뭔가 변화도 없고, 부족하기만 한 교회의 일부가 되어 그냥 세월만 보내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땅에서 매어 하늘을 묶고, 땅에서 풀어 하늘도 풀게하는 능력있는 아버지의 집에 살고 있다. 교회에 부어주신 영광 안에서 우리는 강력하다.

그러므로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교회의 일원이 된 사람은 혈과 육으로 되지 않고, 하늘 아버지의 복을 받아 믿음을 갖고, 믿음을 갖게 하는 복 받은 자다. 이 직책을 귀히 여기고, 이 복에 감사하자. 주의 뜻이 우리를 통해 이뤄지는 일을 목격하는 증인이 되어 전도의 기쁨을 공유하자. 우리는 하지 않지만, 주님이 하시고, 교회를 통해 일하시며 복을 전하시는 그 기적의 일부가 되자.

마 16: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20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