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조 외경을 읽읍시다

제 6 조 정경과 외경의 차이점
The Difference Between the Canonical and Apocryphal Books
우리는 외경들the apocryphal 즉, 에스드라3, 4서와 토비트, 유딧서,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에스더서의 부록, 아사랴의 기도, 불구덩이 속의 세 소년 찬미서, 수산나, 벨과 용, 므낫세의 기도, 마카베오상하를 이 거룩한 책들과 구별합니다distinguish. 교회는 이 외경들이 정경과 일치하는 한에서만 읽을 수 있고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경들은 믿음이나 기독교에 대한 어떤 요점들을 확증하는 증거를 삼는데 있어서 어떠한 능력이나 권위를 갖지 못할 뿐 아니라, 더욱이 거룩한 책들의 권위를 실추시키는데detract 사용될 수 없습니다.

책에는 교과서와 참고서와 만화책이 있습니다. 이 중 성적향상에 도움되는 책은, 교과서와 참고서 입니다. 만화책을 경계해야 합니다. 물론 교과서가 가장 중요합니다. 시험 문제가 교과서 중심으로 나온다고 하지만 참고서를 보면 교과서를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참고서는 많을 수록 좋습니다.

교회에는 성경, 외경, 위경이 있습니다. 이중 신앙 성장에 도움이 되는 책은 성경과 외경입니다. (벨직 신앙고백 제 6조 “…일치하는 한에서 읽을 수 있고,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성경이 가장 중요합니다. 성경을 통해 구원 얻는 길을 알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참고서인 외경을 보며 교훈을 얻는 것은 권장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외경을 읽으며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물론 성경보다 외경의 권위를 더 높인다거나, 정경에는 없고, 외경에만 나오는 내용을 신앙의 일부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이 권위의 문제는 다음 조항에서 더 다루겠습니다.

말라기와 마태복음 사이의 400년 침묵기에 그리스의 알렉산더가 유대를 침략했습니다. 그리스는 우상을 세우고 성전 제사와 할례를 금하고 어기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이 박해에 저항하여 독립운동을 한 마카비 가문의 이야기, 성전을 되찾고 정결케하여 다시 개장한 수전절, 처음에는 멋진 신사의 나라처럼 인식되어 동맹을 맺은 로마 나라 소식, 등이 마카비서에 들어 있습니다. 외경 중의 하나인 마카비서를 통해 우리는 구약과 신약의 간격을 이해하고, 세계사 속에서 예수님의 위치를 정확히 알게 됩니다.

외경 중에는 수산나 이야기, 유디트 이야기 등 제법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전혀 감흥이 없는 책도 있습니다. 무어보다 성경 66권이 주는 것과 같은 영감과 감동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외경을 멀리해도 좋을까요?

집에 참고서 한 권도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쩔수 없이 교과서만 읽는 학생보다 다양한 참고서도 읽는 학생의 성적이 더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녀들에게 참고서를 사주는 것 아닙니까?

신앙성장을 위해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외경도 읽어야 합니다. 대부분 개신교인은 외경의 존재도 모르고, 읽지 않습니다. 아니 본적도 없습니다. 천주교인은 구약 외경이 아예 성경책에 들어 있습니다. 성경을 읽는 빈도와 열정이 동일하다면, 참고서인 외경을 가지고 다니면서 가끔씩 접하게 되는 천주교인과 아예 외경을 본 적도 없는 개신교인 중 누가 더 성경을 잘 이해하겠습니까?

우리가 성경을 제일 잘 안다는 오만을 벗어버리고, 다양한 외경과 참고문헌을 접하여 성경의 진리를 더 잘 알아가기에 힘씁시다. 교회는 이 외경들이 정경과 일치하는 한에서만 “읽을 수 있고”,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제 5 조 성경의 권위 The Authority of Holy Scripture

제 5 조 성경의 권위 The Authority of Holy Scripture
우리는 이 모든 책들, 그리고 오직 이 책들만을 우리의 믿음을 구성하고regulation 기초하고foundation 확증하는confirmation 거룩한 정경holy and canonical으로1 받아들입니다.2 우리는 이 책들에 포함된 모든 것들에 대하여 어떠한 의심없이 믿습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받아들이고 승인했기receives and approves 때문이 아니라, 특별히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heart 속에서 그 책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며,3 또한 그 안에 담겨진 내용들이 그 자체로 증거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심지어 눈 먼 자the blind라 할지라도 그 책들 안에 예언된 모든 것들이 성취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4

1 딤후 3:16-17
2 살전 2:13
3 고전 12:3; 요일 4:6; 5:7
4 신 18:21-22; 왕상 22:28; 렘 28:9; 겔 33:33

1-1. 구약성경 정경화 – 구약은 70년 얌니아 회의에서 정경이 확정되었습니다. 이미 오래동안 유대교는 구약성경을 읽고 기록하고 암송했습니다. 그러나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추방된 이스라엘 민족은 온 세상으로 퍼져갔습니다. 문화 지역 언어가 다른 곳에 가서 사는 유대인 공동체들이 많아짐에 따라, 공식적으로 구약성경의 목록을 한번 정리해야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얌니아 회의 에서 정해서 성경이 된 것이 아니고, 이미 있는 성경을 회의에서 확인 한 것입니다.

만약 우리 인간이 모여서 교회에 유리한 것만 골라서 성경으로 만들자고 했다면, 구약성경에서 골치아픈 내용들, 부도덕한 내용들은 다 빼버렸을 지 모릅니다. 요즘 시대에 보기에는 적절치 않게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잔인하게 보이는 표현은 다 삭제했겠지만, 우리 선배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성경을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알고 받아들였습니다. 이들이 한 것은, 진짜 성경과 성경이 아닌 참고서인 외경 및 가짜 성경들을 분리한 것입니다.

1-2. 신약성경 정경화 – 신약은 막 예수님 사후 사도들에 의해 한창 기록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사후 10년쯤 지나서 아마도 야고보서나 혹은 바울이 갈라디아서가 가장 먼저 쓰여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이 100년 쯤에 마지막으로 써졌습니다. 교회가 각지에 세워짐에 따라, 교회를 지도할 사도들의 책들이 널리 읽혔으며, 이 책들은 더 많은 교회들에서 돌려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도들이 죽은 뒤에, 사도의 제자들이 교회를 다스리고 가르쳤습니다. 이들을 속사도라고 부릅니다. 속사도가 죽은 다음에 교회를 지도한 사람을 교부라고 부릅니다. 속사도와 교부시대에도 신약 27권이 교회에서 성경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교회가 성장하면서 다양한 위조문서가 등장합니다. 당시 유행하던 영지주의 철학의 생각으로 적혀있고 또 책의 이름을 어떤 예수님의 제자가 썼다고 주장하는 책들도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교회는 어떤 책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어떤 책이 가짜 책인지 쉽게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교회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지로 뻗어나가서 다양한 인종과 언어의 민족들이 한 신앙을 공유하게 되자 신약성경의 목록을 정리해 줄 필요가 더 커졌습니다. 그래서 397년 카르타고 회의에서 27권 신약 목록을 확정했습니다. 이 때, 알렉산드리아 감독이던 아타나시우스가 27권을 제시한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성경으로 받은 책은 물론 그 내용이 영감을 주는 책이어야 하고, 사도가 쓰거나, 최소한 예수님을 본 사람이나 사도의 제자가 쓴 책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사도의 이름을 도용한 가짜 책들이 등장하여 혼란을 줍니다. 물론 훈련된 눈으로는 너무 쉽게 구분할 수 있지만, 초신자들 사이에는 혼선이 빚어졌습니다. 그래서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여서 신약 정경 27권의 목록을 공표합니다. 이때 정경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고, 이미 교회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겨지고 성경으로 읽힌 책들의 목록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입니다.

2. 외경 참고서 – 성경에는 물론 외경이 있습니다. 이집트 콥틱교회나, 정교회 일부는, 헤르메스 목자의 편지, 디다케 등 을 추가로 정경으로 받기도 합니다. 시리아와 이디오피아 등 일부 특정지역 교회에서 외경을 받지만, 대부분은 신약 27권을 졍경으로 받습니다. 이 책들은 1세기 이후 2세기 에 쓴 책인데, 사도들이 죽은 뒤에 등장한 2세기 교회의 지도자를 속사도 혹은 교부라고 부르는데, 이 때 쓰여진 책입니다.

3. 허위문서 위경 – 또 위경, 가짜 성경이 있습니다. 도마복음서, 베드로계시록 등 이름부터가 사도의 권위를 빙자한 것입니다. 내용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새를 죽였다가 살렸다거나 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 들었습니다. 영지주의 영향을 받아 영은 거룩하고, 육은 더럽다는 세계관이 들었습니다. 위경은 그 수준이 한참 떨어지므로 읽어보면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한 때 한국 기독교서점가에서 가장 유명했던 위경은 빌라도의 고백입니다. 예수님을 죽인 빌라도가 결국 복음을 발견하고 자기 죄를 뉘우치며, 신자가 되었다는 감동적인 내용입니다. 근데 너무 드라마처럼 딱 들어맞고, 너무 감동적이지만 이는 성경을 기초로 쓴 감동소설에 불과합니다.

감동적이라고 모든 책이 성경은 아닙니다. 감동과 영감을 구분하십시오. 하나님의 숨길로 쓰여진 성경은 감동을 주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를 교훈하고 책망과 바르게하고 의로 교육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건강하게 하는 쓴 약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십시오. 듣고 싶은 이야기만 골라 듣지 말고, 모든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정경을 읽고, 듣고, 순종하십시오.

제 4 조 정경 The Canonical Books (신약)

제 4 조 정경 The Canonical Books

우리는 성경the Holy Scriptures이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곧 구약과 신약으로, 이 책들은 정경이며, 이 사실에 대하여 어떠한 이의도 있을 수 없음을 믿습니다. 이 책들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다음과 같은 이름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의 책들 : …

신약의 책들 : 4복음서들, 즉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사도 바울의 13개 서신들 즉,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 나머지 7개의 서신들 즉,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1,2,3서, 유다서, 사도 요한의 계시록.

구약은 5,12,5,5,12 = 39권입니다. 모세오경 역사서 문학서, 긴선지서, 짧은선지서 입니다.

특히 소선지서를 호욜암, 옵욘미, 나합습, 학슥말로 외우면 구약성경 찾는데 자신감이 생깁니다.

신약은 5+14+7+1=27입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등 역사서 5, 바울서신으로 불리는 14개의 편지는 롬, 고전후 갈엡빌골 살전후까지는 받는 교회의 이름, 딤전후 딛몬히까지는 받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뒤 7은 편지를 쓴 사도들의 이름을 따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마지막은 신약의 예언서인 요한계시록입니다.

신약성경의 목록을 외우려면, 먼저 4 복음서인 마막눅요를 기억하십시오.

그 다음 편지들은 갈엡빌골, 딛몬히약을 기억하십시오. 이 비교적 짦은 편지들을 기억하면 신약성경의 순서가 손에 잡힙니다. 갈엡빌골 앞과 뒤에는 편지를 두번 보낸 ‘전후’서가 있습니다. 고린도전후, 데살로니가 전후가 감싸고 있습니다. 딛몬히약도 앞에는 디모데전후, 뒤에는 베드로전후가 감쌉니다. 그 뒤로 요한123, 유다서, 계시록 하면 끝납니다.

(벧전 2:1-2) 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벧전 2:1-2) 1 So put away all malice and all deceit and hypocrisy and envy and all slander. 2 Like newborn infants, long for the pure spiritual milk, that by it you may grow up into salvation–

신령한 젖은 성경말씀인데, 아이를 키워보면 하루 세번도 부족하고, 매 2시간 마다 젖을 갈구하는 아이처럼 사모하라는 강조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사람의 행동과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읽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을 보내셔셔 죄인이 깨닫고 돌아오게 합니다. 우리는 자기 힘으로 복음을 전하려 하지 말고 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말씀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면 이미 구원을 얻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성경말씀은 구원을 주시려는 말씀이지, 어떤 차를 사야할 지, 어떤 대학에 가야 할 지를 결정해 주는 책이 아닙니다. 성화의 과정을 걷는 신자가 매일에서 선택과 결정하고 남은 생애동안 신자가 이웃을 사랑하려면, 학교에서 배우고 신문을 읽어야 합니다. 비로소 우리는 현재 처한 상황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자들이 한손에 성경과 한손에는 신문을 들라고 한 이유입니다. 말씀으로 구원을 얻고 이를 바탕으로 더 많이 읽고 배우고 노력하십시오. 그렇게 하여 자신이 구원얻는 데서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에 구비된 군사가 되십시오.

제 4 조 정경 The Canonical Books (구약)

제 4 조 정경 The Canonical Books

우리는 성경the Holy Scriptures이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곧 구약과 신약으로, 이 책들은 정경이며, 이 사실에 대하여 어떠한 이의도 있을 수 없음을 믿습니다. 이 책들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다음과 같은 이름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의 책들 : 모세오경,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와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기상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서와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이사야,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신약의 책들 : 4복음서들, 즉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사도 바울의 13개 서신들 즉,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 나머지 7개의 서신들 즉,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1,2,3서, 유다서, 사도 요한의 계시록.

벨직신앙고백 강해를 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대학생이 된 젊은이들 입니다. 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기독교의 기초를 다시 한번 제대로 짚어줄 필요를 느꼈습니다. 또한 장년들도 다시 한번 정리하고 기억을 새롭게 하고 싶습니다.

구약 39권은 유대교와 우리가 함께 읽는 성경입니다. 물론 유대교는 이외에 미드라쉬(구약 주석), 미쉬나(구전 성경), 탈무드(실천사례) 등 자료도 참조합니다. 유대교도 이미 히브리어로 된 많은 자료 중에서 어떤 것이 하나님 말씀인지에 대한 합의가 있었습니다.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이후 남은 바리새인이 얌니아 회의에서 39권 정경과 15권의 외경 목록을 정했습니다.

구약은 타나크, 즉 모세오경인 토라, 선지서인 네이빔(전기선지서인 역사서, 후기선지서인 17선지서), 성문서 즉 문학적인 신앙표현인 케투빔으로 장르를 나누었습니다.

39권의 이름과 순서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역사서 17권 – (토라)창출레민신, (전기예언서) 수삿룻, 삼상 상하, 왕상 왕하, 대상 대하, 스느에,

성문서 5권 – 욥시잠전아

예언서 17권 – (긴 예언서 5) 사렘에겔단, (짧은 예언서 12) 호욜암, 옵욘미, 나합슥, 학슥말

무식한 것 같아도 이렇게 한 서너번씩 읽으면 외워집니다. 한번 용기를 내어 순서를 다 외워 봅시다.

불신자들이 생각하듯이 성경은 사람이 모여서 자기 임의대로 정경으로 정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주어질 때부터, 하나님의 영감으로 씌여진 성경은 청중들에게 영감있는 하나님의 말씀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를 수천년간 받았던 유대인들이, 70년 이스라엘 멸망후 온 세상에 흩어진 유대인들에게 신앙지침을 주기 위해 다시 한번 정경의 목록을 정리한 것입니다. 회의에서 정해서 정경이 된 것이 아니라, 교회가 먼저 정경으로 받았고, 회의에서 목록을 정리했다는 순서를 기억하십시오.

외경도 읽어볼 만 합니다. 당시 페르시아, 그리스 시대 상황을 알 수 있는 참고자료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인 배경을 배우는 유익이 있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여길만큼 감동적인 말씀은 명백하게 적습니다. 어느정도 신앙생활을 하신 분이라면 쉽게 정경 39권과 외경 15권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대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인지 분별할 수 있을까요?

그 자녀는 아버지의 음성을 분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그 말씀을 듣습니다.

요한복음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이 말씀을 듣고 공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 그 우리 안의 양이라고 여기셔도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을 읽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는 영혼은 바로 하나님의 것이니, 그의 말씀의 내용도 따르십시오. 아버지의 음성입니다.

제 3 조 하나님의 말씀 The Word of God

제 3 조 하나님의 말씀 The Word of God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충동impulse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후서 1장 21절에서) 말한 바대로 성령님의 감동을 받은moved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말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이에 따라,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한 그의 특별한 돌보심special care 안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 곧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명령하셔서 당신의 계시된 말씀revealed Word을 기록하도록 맡기셨으며,1 그는 친히 자기 자신의 손가락으로 율법의 두 돌판을 기록하셨습니다.2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기록들을 거룩하고 신성한 성경holy and divine Scriptures이라고 부릅니다.3

1 출 34:27; 시 102:18; 계 1:11,19 2 출 31:18 3 딤후 3:16

성경이 특별계시라면, 대체 이 성경은 무엇인가, 어떻게 쓰였으며, 어떤 책들이 성경인가?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이 질문이 먼저 해결되고 나서야, 성경에서 말한 천지창조, 타락과 구속과 완성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성경의 내용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경은 계시를 기록한 책입니다. 계시하셨다는 뜻은 드러내 보이셨다는 말입니다. 모든 진리가 아닌,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만 골라서 드러내 보이셨고, 그 보여주신 지식을 적은 것이 성경입니다.

그 책을 기록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성경은 하나님이 쓴 책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쓰기를 통해 우리에게 그 뜻을 밝히신 것은, 모세가 받은 두 돌판에 쓰신 율법입니다. 그외의 기록은 모두 사람이 쓴 것입니다. 정확히는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쓴 책입니다.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성경에 기록하셔서 우리에게 그 뜻을 전하셨습니다. 이를 성경이라고 합니다.

누구는 성경 저자의 손이 신들린듯 저절로 움직여서 잉크를 찍어서 기계처럼 적어내려갔다고 생각도 했습니다. 어떤 이는 사람이 고민하고 창안하고 짜내어서 소설쓰듯이 캐릭터를 창조하고 이야기를 끌어나간 그럴듯한 소설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성경 저자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그의 삶과 글쓰는 능력과 지적 수준을 사용하시고,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표현방식과 문체로 책을 쓰셨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성경책의 내용속에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성품뿐 아니라 성경 저자의 인격과 성품이 녹아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모든 행동이 주님을 위해 하는 일이며, 또 주께 쓰임받는 하나님의 일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하는 일에는 주님의 성품이 녹아 있습니다. 또한 우리 성품과 기질이 담겨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이 거룩한 하루 하루가 하나님께 올려드릴 때, 우리의 어떤 삶이 녹아있어야 할까요? 한글자 한글자 성경을 기록한 제자들의 마음으로 한시간 한시간을 정성껏 일하며 살며 주님께 드립시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의 숨결로 쓰셨습니다. 하나님이 저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어 그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숨은 곧 성령입니다. 성령님은 성경을 쓸 때 뿐 아니라 교회에서 읽혀서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여질 때도 역사하셨습니다. 그 뒤 성경을 복사하고,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도 성령꼐서 일하셔서 그 감동이 다른 번역 성경을 읽을 때도 똑 같이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그 말씀을 한글이나 영어 성경으로 읽을 때, 우리 마음에도 성령님이 일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영혼에 들려지게 하십니다.

성령님이 오늘 우리가 말씀을 듣고 읽을 때, 성령님께서 일하실 것을 기대하고, 우리 마음이 뜨거워지고 우리 곁에서 일하시는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는 엠마오 제자들이 경험한 깨닫는 경험을 다시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2조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리시는 방법

제 2 조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알리시는 방법
How God Makes Himself Known to Us


우리는 두 가지 방법을 통해 하나님을 압니다.

첫째는 우주의 창조creation와 보존preservation과 통치government에 의한 것으로, 이는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서1 그 안에 있는 크고 작은 모든 피조물들은 아주 많은 글자들처럼 사도 바울이 (로마서 1장 20절에서) 말한 바대로 우리를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invisible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power과 신성deity을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게 인도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사람에게 죄를 인정하게 하기에 충분하여sufficient to convict men, 사람이 핑계치excuse 못할 것입니다.

둘째는 그분의 거룩하고 신적인holy and divine 말씀을 통한 것으로,2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의 그의 영광과 구원에 대하여 보다 더 분명하고도 충분하게dearly and fully 자기 자신을 알리십니다.

1 시 19:1-4
2 시 19:7-8; 고전 1:18-21

신앙적 사유의 첫번째 단계는 철학과 논리학의 구조를 따릅니다. 예수님과 구원과 성령과 교회를 말하기 전에, 대체 우리는 이런 것을 어떻게 알 수있는가? 즉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우주의 진리 대하여 우리 인간이 어떻게 알게 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답해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우리가 받은 은혜를 전하기에 마음이 바쁩니다. 그러나 불신자와 대화하려면 세상의 논리와 철학적 구조에 따라 차근차근 우리 논리를 풀어가야 합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만 묻자. 애시당초 대체 너는 이런 진리를 어떻게 알았다는 거냐?>는 질문부터 답해야 합니다.

이에 대한 정답은 <하나님이 알려주셔야 우리는 알 수 있다> 입니다. 유한한 사람은 무한한 신의 영역을 감히 엿볼 수 없습니다. 신이 보여주시는 만큼만 알 수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로 보여주십니다. 이는 자연과 성경말씀입니다. 그래서 조직신학의 첫 수업은 <계시>에 대한 것입니다. 신학에선 자연을 일반계시, 성경을 특별계시로 설명합니다.

먼저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고, 보전하며, 다스립니다. 이 자연을 보면 죄에 물들지 않은 본연의 인간이라면 마땅히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죄인은 자연을 보고서도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눈앞의 자연은 우리가 핑게치 못할 증거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입니다. 성경은 우주의 모든 것을 알려주는 교과서가 아닙니다. 단지,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만큼만 정리한 책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구원에 대해 알게 됩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존재를 처음 인식한 그 순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가 계시고,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처음 들은 날은 언제입니까? 하필 나에게 그 진리를 보여주신 그 은혜는 얼마나 큽니까? 다시 감격하고 감사합시다.

벨직신앙고백, 1조 우리는 한 분 하나님을 믿는다.

벨기에 신앙고백 제 1 조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만이 계시다 There is Only One God

우리 모두는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만only one God이 계시다는 것을 1 마음heart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합니다.2 그분은 단순하시고simple 영적인 존재spiritual Being입니다.3 그분은 영원하시며eternal,4 완전히 이해될 수 없고incomprehensible,5 보이지 않으시며invisible,6 변하지 않으시고immutable,7 제한이 없으시고infinite,8 전능하시고,9 완전히 지혜로우시며,10 공의로우시고,11 선하시고,12 모든 선이 흘러나오는 근원the overflowing fountain of all good이십니다.13

1 신 6:4; 고전 8:4,6; 딤전 2:5 2 롬 10:10 3 요 4:24 4 시 90:2 5 롬 11:33 6 골 1:15; 딤전 6:16 7 약 1:17 8 왕상 8:27; 렘 23:24 9 창 17:1; 마 19:26; 계 1:8 10 롬 16:27 11 롬 3:25-26; 9:14; 계 16:5,7 12 마 19:17 13 약 1:17

벨직신앙고백은 1561년 지금의 네덜란드 남쪽 벨직에서 귀도 드 브레 목사가 작성한 신앙고백입니다. 37조의 항목으로 기독교의 진리를 잘 요약했습니다. 종교개혁기 당시 루터, 칼빈은 물론 각 지역의 목사는 각 지역의 언어로 개신교 신앙을 정리하였습니다. 그중 가장 인기를 얻은 개혁교회의 신앙요약이 바로 벨직신앙고백입니다. 장로교회에서는 시간이 더 흐른 뒤에 영어로 작성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받아들입니다. 둘의 내용상 아주 비슷합니다.

신앙고백 즉 교리의 요약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사람이 만든 인위적인 신학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속성을 말하는 벨직신앙고백 제 1조에서 볼 수 있듯이, 잘 요약된 신조의 표현은 단어 하나가 성경에서 나왔습니다. 이렇게 요약된 신앙의 뼈대를 우리는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여, 스스로 신앙을 확인하고 후대에 전수합니다.

성경은 재미있지만 신조는 지루하다는 선입견도 오해입니다. 신조는 성경을 요약한 것이므로, 성경이 재미있다면 그 요약도 흥미있게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하나씩 묵상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의 성품 하나하나가 우리의 찬송과 기도입니다. 기도의 첫 머리에 주님의 이름을 부를 떄, 그의 속성을 따라 부르고 그 성품을 의지하여 기도 하십시오. 예를 들면 <영원하신 하나님, 우리는 병과 죽음으로 덧없는 삶을 살지만, 주님의 영원하심으로 우리를 살리시고 영생을 허락하옵소서. 우리가 오늘 하는 일도 덧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님 앞에서 우리 노력과 오늘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영원히 기억해 주옵소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붇잡고 기도할 하나님의 성품, 불러 아뢸 주님의 아름다운 그 이름을 무엇입니까?

마 20:1-16 천국은 불공평한가?

포도원 일꾼의 비유는 종종 혼란스럽다. 9시부터 일한 종과, 12시, 3시, 5시부터 일한 종이 같은 돈을 받는다. 9시간 일한 종과 한시간 일한 종이 같은 품삯을 받는 것을 보고 불공정하다고 불평한다.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주님의 대답을 들어보니, 일리 있다. 공평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를 사회경제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면 오류에 빠진다. 예를 들면 김재수 교수의 경제학적 해석은 지엽적인 사항에 빠져 본지를 놓친 셈이다. 그는 이 비유를 풀이하며,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은혜를 베푸신다’는 ‘주인 관점’의 일반적인 해석 대신 ‘일꾼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고 제안했다. 품꾼은 농장주가 정해 주는 대로 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고, 임금 협상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을’이었다는 것이다’ (뉴스앤조이) 다른 방식으로 억지로 주인을 변호할 필요 없다. 천국에 대한 비유이므로 비유의 세부사항에 휘둘리지 말고 비유가 가리키는 주제에 집중하면 좋겠다.

태어나면서부터 교회에 나온 사람이 있다. 15살에 주님을 만나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도 있다. 25살, 35살, 45살에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과, 55, 65살에 주를 만난 사람이 있다. 심지어 75살 이후 죽기 직전에 주를 만난 사람이 있다. 평생 주일 오전을 예배 드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과 교회에서 살며,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 하나님 곁에 있던 사람은 아주 불행하고, 세상에서 맘대로 살다가 죽기 직전 만나서 몇시간만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은 가장 행복한가? 아니다, 오랜 신앙생활을 하며 받음 복이 크다. 그러므로, 더 먼저 믿었다고 억울할 것 없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포도원 일꾼 비유를 배에서 구조하는 비유로 바꾸어 보자. 배에서 물에 빠졌는데, 9시에 일찍 구출된 사람과, 아홉시간 뒤에 구출 된 사람이 있다고 하자. 먼저 구출된 사람은 배 안에서 커피믹스를 마시면서 구출과정을 지켜본다. 마지막으로 오래동안 바다 위에 떠서 저체온증으로 고생하다 새파랗게 되어 구출된 사람에게 담요도 덮어주고, 온열시트도 꽂아주고, 수액주사도 놓는 것을 보고서, 왜 나는 수액주사를 안주느냐, 같은 세금을 내는데, 왜 나는 적십자 담요 안주느냐? 구조가 불공평하다 불평할 사람은 없다.

우선 하나님 곁에 있는 것이 불행하고, 율법을 지키는 삶이 고통스럽다는 전제를 바로잡아야 한다.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 있고, 주의 궁전에서의 하루가 세상에서 천날보다 낫다. 먼저 구조된 사람은 하나님 곁에서 복을 누릴 시간이 많아 받은 은혜가 더 크고, 성장할 시간이 많아서 감사거리가 많고 행복하다. 늦게 구조된 사람은, 이 땅에서 창조주를 만나지 못한 채 혼자서 고독 근심 걱정 불안 염려로 평생을 보내다 마지막에 겨우 구조된 것이다. 결국 구조된 모두가 행복하지만, 먼저 온 사람은 더욱 복되다.

집나가서 고생하다 거지꼴로 돌아온 둘째는 행복하고, 아버지 집에서 꾸준히 일하던 첫째는 불행한가? 첫째 아들이 더 행복한 것을 잊지 말자. 그런데 그 이야기에서도 첫째아들은 불평했다. 불평하지 말자. 주의 궁전에서 문지기가 되는 것이 차라리 더 행복하다는 다윗의 고백이 우리 고백이 되게 하자.

(마 20:1-16) 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5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7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마 19:23-30 상 받으세요.

게임을 하는데, 어느 한 사람이 처음부터 ‘난 상품엔 관심없어. 안 받아도 돼’ 하면 흥이 깨진다. 다들 의욕이 사라진다. 별것 아닌 상품이라도 서로 재미있게 하려면, 상품도 있고, 경쟁하며 열심히 하면 더 재미있다. 우리 가는 길도 끝에는 상이 있다. 사실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가장 큰 상이다. 안 주셔도 상관없지만, 주신다고 하니 더 재미있게 게임에 임해야 겠다.

베드로가 받을 상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예수를 따르는 제자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고 다스릴 것이라 하셨다. 열 두 제자는 상징적으로 이스라엘의 대표다. 가롯 유다가 배신했으므로 한 지파가 빠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징을 무시한 생각이다. 상도 상징이겠지만, 여하튼 없지 않다. 주를 위하여 집 형제 부모 (혹은 아내) 자식 땅을 버리면 여러 배를 받고 영생을 상속받는다고 하신다.

이 외에도 열 두 마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다, 하늘에 쌓은 보화가 있다, 예비한 곳이 있다, 달리기 경주에서 이기면 월계관을 받는다는 등 천국에서 받을 상을 종종 언급하신다.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여하튼 믿음의 길을 가는 경주를 마치면 상이 있다. 그 상을 받으려고 열심히 달려가는 선수처럼 달려가야 한다.

그러나 기억할 것이 있다. 처음 된 자가 나중 된다. 열심히 달려서 결승점까지 가면 상을 주신다. 주시는데, 시상 기준은 이 땅의 상식과는 다를 수 있다. 하늘의 법칙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상을 나눠 주실 것이다. 남이 받는 상과 비교하지 말고, 내게 주실 상을 기대하며 달려가자.

(마 19:23-30)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5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어떤 사본에는, ‘부모나’ 아래에 ‘아내나’가 있음 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마 19:1-12 이혼까지 허락하시는 은혜의 법

율법은 사람을 구속하고 얽어매기만, 복음은 자유케하고 해방시킨다. 어떤 이는 구약은 나쁜 율법, 신약은 좋은 은혜라는 이분법으로 단순하게 본다. 그러나 유치원적인 생각이다. 신약과 구약의 하나님이 다르지 않다. 신약의 복음도 하나님의 법으로서 권위에 복종하며 질서있게 행해진다. 구약의 율법도 자유케하고 약자에게 소망을 준다.

6절까지는 이혼하지 않는게 좋다는 일반적인 가르침이다. 7절부터는 그러면 왜 모세가 이혼증서를 써주라고 했는가에 대한 대답이시다. ” 8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 주님은 인간의 한계를 아신 하나님이 이혼을 허락하셨다고 하신다.

이혼은 죄인가? 죄는 아니다.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인생에서 불행은 종종 피할 수 없다. 다들 행복한 결혼생활이 되기를 축복하며 기도하지만, 간혹 나 혹은 배우자의 잘못으로 이혼해야 할 경우가 생기는 것이 인생이다. 실패를 정죄할 수 없다.

이 때 이혼을 금하여, 새출발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잔인하다. 오히려 하나님의 법은 구약때부터 이혼증서를 발급하도록 명하셨다.”(신 24:1)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이혼증서를 받아 새출발하는 것은, 죄인이 용서받고 새사람이 되는 신약의 복음 은혜와 유사하다. 구약의 율법은 사람을 힘들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백성답게 행복하게 살도록 도와주기 위해 주신 은혜의 법이다. 즉 구약 율법에서 신약 복음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다. 8절 “(본래는 그렇지 않지만, 부득이) 모세가 너희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다”고 했습니다.

시 119:114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115 너희 행악자들이여 나를 떠날지어다 나는 내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리로다

하나님의 계명은 우리의 피난처와 방패가 된다. 주님의 은혜를 구하자. 율법을 사랑하자.

(마 19:1-12)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2 큰 무리가 따르거늘 예수께서 거기서 그들의 병을 고치시더라 3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5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6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7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8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10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12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