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조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임

제 13 조 하나님의 섭리 The Providence of God
우리는 이 선하신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이후에 만물을 유기하시거나abandon 운명fortune 혹은 우연chance에 맡기지 않으시고,1 당신의 거룩한 뜻에 따라 다스리시고 통치하심으로rules and governs 이 세상에는 그분의 지시direction없이 아무 것도 일어날 수 없음을 믿습니다.2 그러나 하나님은 저질러지는 죄의 조성자the Author of the sins도 아니시고, 그 죄들에 대한 책임을 지셔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3 왜냐하면 그의 능력과 선하심은 너무나 크고 헤아릴 수 없어서 심지어 마귀나 악한 사람들이 부당하게 행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가장 뛰어나고 공정한 방식just manner으로 당신의 사역을 정하시고ordains 행하시기executes 때문입니다.4 그리고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그분의 일하심His actions에 대해서는 우리의 능력에 허용된 범위를 넘어서는 호기심으로 질문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최대의 겸손humility과 경외심reverence으로 우리에게 감춰진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을 찬양하고adore,5 우리는 스스로 그리스도의 학생pupils of Christ임에 만족하여, 이러한 한계를 넘지 않고 그의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것만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6

이 교리는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위로consolation를 주는데, 그 이유는 어떠한 일도 우리에게 우연히 일어나지 않고, 오직 우리의 은혜로우신 하늘 아버지의 지시direction에 따라 일어나는 것임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의 돌보심으로 우리를 감찰하시고watches, 모든 피조물들을 그의 능력 아래 붙드셔서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그가 다 세신 바 되었기 때문에), 참새 한 마리라도 우리 아버지의 뜻will이 없이는 땅에 떨어질 수 없습니다(마 10:29-30). 우리가 이것을 신뢰하는 것은 그가 마귀와 모든 원수들을 제압하심으로 하나님의 허락permission과 뜻will 없이는 그것들이 우리를 해할 수hurt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7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물에 아무 상관하지 않으시며 다만 우연에 맡겨두셨다고 말하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가증스런 오류the damnable error of the Epicureans를 배격합니다.

1 요 5:17; 히 1:3
2 시 115:3; 잠 16:1,9,33; 21:1; 엡 1:11-12; 약 4:13-15
3 약 1:13; 요일 2:16
4 욥 1:21; 사 10:5; 45:7; 암 3:6; 행 2:23; 4:27-28
5 왕상 22:19-23; 롬 1:28; 살후 2:11
6 신 29:29; 고전 4:6
7 창 45:8; 50:20; 삼하 16:10; 롬 8:28,38-39

지난 해에도 기쁜 일과 슬픈 일이 반복되었다. 이슬람 신자들은 ‘인샬라’ 즉 알라의 뜻이라며 상황을 잘 수용한다. 힌두교인은 카르마라고 하며 받아들인다. 불교인도 명상하며 소욕을 극복하려 노력 한다. 그에 비해 서구 기독교인은 아마도 가장 비수용적인 종교인일 것읻다. 서구에선 나쁜 상황을 도전으로 보고, 극복하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창조한 하나님이 또한 섭리하는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프로비던스, 즉 섭리는 기독교 인에게 가장 중요한 위로의 근거 중 하나다. 무작위 우연에서 생겨나 우연히 살다 우연히 죽는 무의미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켜보고 개입하며 조정하시는 의미있는 삶이라는 점이 기쁨과 고난을 겪는 우리에게 위로를 준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Rm 8:28) And we know that for those who love God all things work together for good, for those who are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어쩔 수 없는 체념이 아니라, 섭리하실 하나님에 대한 기대와 소망으로 우리에게 주신 상황을 수용하자. 주의 섭리를 믿고 위로 받기 바란다.

제 12 조 성탄절의 천사와 마귀

제 12 조 모든 것, 특히 천사의 창조 The Creation of all Things, Especially the Angels
우리는 성부께서 말씀, 곧 그의 아들을 통하여 하늘과 땅, 그리고 모든 피조물들을 무(無)로부터 창조하셨고creatio ex nihilo, 그것들이 그 보시기에 좋았으며,1 그가 모든 피조물에게 그 존재being와 모양shape, 형태form를 주셨으며, 각각의 사역task과 기능function을 부여하심으로 그 창조자를 섬기도록 하셨음을 믿습니다. 우리는 성부께서 또한 자신의 영원한 섭리eternal providence와 무한한 능력infinite power에 따라 모든 천지만물을 계속해서 유지하시고sustain 통치하심govern으로 인간을 섬기도록 하셨으며, 마침내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의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셨음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천사들을 선하게 창조하셔서 그의 사자(使者)messengers로 삼으시고, 당신의 택함받은 백성들을 섬기게 하셨습니다.2

그 천사들 중 일부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높은 지위exalted position에서 타락하여fall 영원한 파멸perdition로 떨어졌으나,3 나머지 천사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이 원래 가졌던 처음 지위를 계속해서 확고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마귀devils와 악한 영들evil spirits은 이렇게 타락하여depraved 하나님과 선한 모든 것들의 원수enemies가 되었습니다.4 그들은 온갖 힘might을 다하여 교회와 모든 성도들을 황폐화시키고ruin, 그들의 악한 궤계wicked devices로 모든 것을 파멸시키기destroy 위해서 마치 살인자처럼 잠복하여 기다립니다.5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의 사악함 때문에 영원한 저주damnation를 선고받아 날마다 무서운 고통horrible torments을 기다리며 지냅니다.6

그러므로 우리는 영들이나 천사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두개인들의 오류error나,7 마귀는 피조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에 기원이 있으며, 부패함corrupted 없이 그 본성 상their own nature 악하다고 말하는 마니교의 오류를 혐오하며detest 배격합니다reject.

1 창 1:1; 2:3; 사 40:26; 렘 32:17; 골 1:15-16; 딤전 4:3; 히 11:3; 계 4:11
2 시 103:20-21; 마 4:11; 히 1:14 3 요 8:44; 벧후 2:4; 유 6 4 창 3:1-5; 벧전 5:8
5 엡 6:12; 계 12:4,13-17; 20:7-9 6 마 8:29; 25:41; 계 20:10 7 행 23:8

(히 2:6-9) 6 그러나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7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8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계 12:) 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4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성탄은 천사의 대목이다. 하늘의 천사도 개입하여 수태를 알리고, 성탄을 알리고, 찬송한다. 주님이 오시니, 천군천사가 동원되어 수발을 들기에 바쁘다.

또한 성탄은 하늘의 싸움이다. 천사였던 마귀가, 아들을 죽이려고 아들을 안고 있는 여자를 공격한다. 계시록 12장은 바로 성탄절이야기다. 마귀의 입장에서 본 성탄절 전쟁이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에 하늘에선 영적 전쟁이 벌어졌다. 겨우 보호받고 피신하여 구원의 불씨가 살아남았다. 승리가 주께 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온 우주가 전쟁한 것을 기억하라.

제 11 조 성령님은 하나님이시다

제 11 조 성령님은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시다 The Holy Spirit is True and Eternal God
우리는 또한 성령님께서 영원부터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신다는 것proceeds from을 믿고 고백합니다. 그분은 만들어지지도, 창조되지도, 태어나신 것도 아니라neither made, created, nor begotten, 다만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신다고proceed from both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1 성령님께서는 순서order에 있어서 삼위일체 가운데 제3위이시고, 본질essence과 위엄majesty과 영광glory에 있어서 성부, 성자와 동일하시고 하나이십니다. 따라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대로 성령님께서는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십니다.2

1 요 14:15-26; 15:26; 롬 8:9
2 창 1:2; 마 28:19; 행 5:3-4; 고전 2:10; 3:16; 6:11; 요일 5:7

성령님은 오순절 이후에만 등장한 것이 아니다. 구약에 성령의 역할이 적지 않게 숨어있다. 우선 수면위에 운행하시며 천지창조에 함께 하셨다. 아브라함을 방문한 세사람 중 한 명일 수 있다. 삼손 등 사사에게 초자연적인 힘을 주셨다. 수 많은 선지자에게 예언의 능력을 주셨다. 심지어 사울도 선지자 무리에 끼어서 방언을 하였다. 그 외에 구약에서 성령이 계시며 능력을 부여하셨다.

그러나 400년 침묵기에 성령도 잠잠하셨다가 때가찬 구세주가 오셨다. 그리고 그 때 침묵하던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성령님도 다시 활동하셨다. 예수님만 오신게 아니라 성령도 오셨다. 그러니 기쁨의 시즌이 시작되었다.

성탄절에 성령님이 등장하신다. 우선 천사가 말하길 마리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 하였다. 성육신은 엘리사벳과 만났을 때, 임신 6개월인 엘리사벳의 뱃속에서 세례 요한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뛰어 놀았다.

그 뒤로도 성령님은 예수님과 함께 하셨다. 요한에게 세례 받으실 때 비둘기처럼 임하셨다. 성령으로 광야로 이끄셨다, 예수님 가신 뒤 오순절에 오셔서 교회 세우셨다.

성탄은 예수님만의 절기가 아니다. 성탄에, 성령님을 기억하자.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능력,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을 복음의 증인되게 하신 권능, 옥의 문을 열고, 죄인을 부르시는 그 힘을 기대하라. 이 겨울에 성령의 능력을 잊지 말고 구하자 그 강한 능력이 우리 삶에 나타나시도록 간구하자.

제 10 조 예수는 하나님이시다

제 10 조 예수 그리스도는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시다 Jesus Christ is True and Eternal God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신성divine nature에 따라 하나님의 독생하신the only-begotten 아들이시요,1 영원부터 나셨으며begotten from eternity, 만들어지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창조되지도 않으셨고(왜냐하면 그럴 경우 그는 피조물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성부와 동일한 본질essence이시고, 동등하게 영원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시고, 그 본성nature의 참된 속성the very stamp을 나타내시며bear(히 1:3), 모든 것에 있어서 성부와 동등하신 분이심을 믿습니다.2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은, 그가 우리의 본성(즉 인성)을 취하실 때부터가 아니라 영원부터3 그러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다음 각 성경의 증거들을 비교해볼 때 그것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으로, 모세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고,4 사도 요한이 말하기를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그 말씀에 의해서 만물이 만들어졌으며,5 히브리서에 이르기를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이 세상을 지으셨으며,6 또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합니다.7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불리시는 그 분은 만물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을 그때에 계셨다는 사실이 반드시 따라와야 합니다. 따라서 그분은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 8:58)고 하셨고, 그가 기도하시기를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 17:5)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참되고true, 영원한 하나님eternal God이시며, 전능자이시고, 우리가 간구하고invoke 예배하고 섬길 분이십니다.

1 마 17:5; 요 1:14,18; 3:16; 14:1-14; 20:17,31; 롬 1:4; 갈 4:4; 히 1:2
2 요 5:18,23; 10:30; 14:9; 20:28; 롬 9:5; 빌 2:6; 골 1:15; 딛 2:13
3 요 8:58; 17:5; 히 13:8
4 창 1:1
5 요 1:1-3
6 히 1:2
7 고전 8:6; 골 1:16

1.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가 그린 수태고지 (the annunciation)그림에는 하나님의 손, 빛으로 잉태한 비둘기 같은 성령이 보인다. 예수님은 너무 작은지 보이지 않는다. 마리아는 천사가 보낸 메시지를 순종함으로 받는다. 원근법이 적용된 안방 벽에 창문에서 들어온 빛이 어른 거리는데 이를 착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왼편의 구약 이야기는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는 장면이다. 발 밑의 세가지 분홍색 물체는, 사과가 아니라, 장미다. 동산 밖의 세상 발 아래는 가시떨기가 깔려있다. 이브의 왼편은 공간이 없이 답답하게 잘려있다. 한업는 절망과 답답한 세상을 의도적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두 장면을 붙여서 그림으로써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밟는다는 창세기의 예언이 드디어 예수님의 성육신으로 응하였음을 보여준다.

벽에 그려진 할아버지는 성부가 아니라 메시야를 이사야라고 한다.

2. 성탄의 주인공은 산타가 아니라 예수다. 그러나 예수만은 아니라 성부 하나님, 성령님이 함께 한 위대한 구속사 이야기다. 타락직후부터 인류를 구원할 것을 계획하신 성부와, 친히 내려오신 예수님과, 성령잉태를 실행하신 성령 하나님의 삼위일체 연합 행동을 성탄이야기에서 놓치지 말자. 기독교 신조의 중심부분이다.

3. 신성만 강조

기독교 신조의 두번째 부분은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인데 이도 놓치기 쉽다.

신성만 강조하면 인성을 무시한 결과, 예수님은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예수님은 신이니까 죄도 없고, 기적도 베풀고, 하나님이니까 어려움 없이 인생을 살았을 것이라 보기 쉽다. 인간 예수가 아닌 하나님이 십자가를 지셨다고 하면, 하나도 아프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야 한다. 이는 모습만 바꿨다는 삼위일체에 대한 양태론적 해석이며 이단이다.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4. 인성과 신성 동시에 강조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동시에 사람이셨다. 우리와 같은 고난을 받으셨지만 죄가 없으셨다. 식민지 유대에서 태어나 아람어는 물론 그리스어도 배우며, 혼란한 문화 속에서 정체성을 지켜야 했다. 가난한 집의 장남으로 태어나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을 다해야 했다. 예루살렘으로 제사드리러 가는 150km은 군인이 쉬지 않고 삼일을 걸어야 하니, 민간인은 일주일 걸려 갈 만한 곳이다. 내려쬐는 태양은 땀도 증발시킨다. 갈릴리 호숫가를 걸어보며 예수님이 보셨을 풍광을 보는 것은 신자에게 유익하다.

5. 인성만 강조

이렇게 이 세상에 살았던 인간으로서의 예수님을 연구하는 것이 역사적 예수 연구다. 예수님이 걸으셨던 길을 걷는 것, 당시 청년 예수가 고민했을 식민지 문제, 가난의 문제 등을 고민하는 것도 매우 유익하다. 근데, 이 역사적 예수 연구는 인성만 강조하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

그저 멋진 청년 예수가 멋지고 쿨하게 죽어서 우리에게 본이 된 것은 아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잊어서는 안된다.

6. 예수님은 신이시다.

겸손하신 예수님이, 분명하게 ‘나는 하나님이다’고 여러차례 밝히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다. 예수님은 창세전부터 계셨고, 영원토록 영광받으실 하나님이다. 성탄의 주인공이 예수님이라고 하면서도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을 보면 약하고 수동적이고, 대사가 없이 역할이 작다. 이 약한 아이를 보면서 신성을 떠올리기 쉽지 않다.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일부러 약함을 택하셔 내려 오셨다.

주님은 우리처럼 연약한데 처해 보셨기 때문에 우리 모든 어려움을 공감하실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의 신성으로 죄는 없으셨다.

우리 연약한 인생이 성탄절을 다시 맞는다. 인간적으로 열심히 주님께 영광되는 삶을 살지만 실패할 수도 있다. 이 때 우리는 주님의 신성을 의지한다. 기다리던 구원이 더디오다가 때기 차매, 구원이 빛이 임하여 세상을 바꾸신 그 기적을 기억하자. 우리 삶에도 홀연 빛이 임하고, 전부터 약속하신 약속이 응하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바뀌는 기적이 올 것이다. 성탄의 신비가 우리에게 임하기를 기도하자.

제 9 조 삼위일체 성경적 근거와 이단구별법

제 9 조 이 교리의 성경적 증거
Scripture Proof of This Doctrine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성경의 증거로부터,1 그리고 삼위 각각의 사역으로부터, 특별히 우리가 우리 자신 안에서 깨닫게 되는 삼위의 사역으로부터 압니다. 우리로 하여금 이 삼위일체 교리를 믿도록 인도해 주는 성경의 증거들은 구약성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증거구절 모두를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고, 몇몇 구절들discretion만 신중하게 선택하여 언급하면 충분합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6-27)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보라, 이 사람이 우리 중 하나와 같이 되었다”(창 3:22)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 가운데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라는 부분은 하나보다는 더 많은 신적 위격divine persons이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에, “하나님이 창조하셨느니라”라는 부분에서는 하나님이 한 분 하나님임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위격persons을 가지셨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시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만, 구약에서는 다소 분명치 않던 것이 신약에 와서는 매우 명백해졌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마 3:17) 라는 성부의 음성이 들렸고, 성자께서는 물 가운데 계셨으며, 성령님께서는 비둘기의 모양으로 하늘에서 성자 위에 내려오셨습니다.2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신자들의 세례의식에 대해서도 이 형태formula로 제정하셨는데, “너희는 모든 족속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 28:19)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천사 가브리엘은 우리 주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말하기를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이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눅 1:35)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고 하셨습니다. 이 모든 증거구절들에서 우리는 하나의 신적 본질 안에in one only divine essence 세 개의 위격three persons을 가지신 것을 분명히 배울 수 있습니다.

비록 이 교리는 인간의 이해를 한참 뛰어넘는surpasses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이 교리를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교리의 완전한 지식과 열매를 장차 하늘에서 누리게enjoy 될 것을 기대합니다.

나아가, 우리는 우리를 향한 이 삼위의 독특한 직분offices과 사역works에 주목해야observe 합니다. 성부는 그 능력에 따라 우리의 창조주로, 성자는 그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구원자와 구속주로, 성령께서는 그의 내주하심으로 인하여 우리의 성화주Sanctifier로 불리우십니다. 이 삼위일체 교리는 사도시대 이후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대주의, 이슬람, 거짓 그리스도인들과 이단들 즉, 말시온, 마니mani, 프락세아스, 사벨리우스, 사모사타의 바울, 아리우스와 같이 정통 교부들에 의해 정식으로 정죄받았던 사람들에 대항하여 참된 교회 안에서 항상 유지되고 보존되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교리에 관한 세 신경인 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아타나시우스 신경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또한 이 신조들에 일치하는 것으로서 고대교부들이 동의한 신조들도 받아들입니다.

1 요 14:16; 15:26; 행 2:32-33; 롬 8:9; 갈 4:6; 딛 3:4-6; 벧전 1:2; 요일 4:13-14; 5:1-12; 유 20-21; 계 1:4-5
2 마 3:16

  1. 삼위일체 단어는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에 삼위일체의 증거가 있습니다. 벨직신앙고백 9조에서 대표적인 구절을 알려줍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실 때부터 성령은 수면위에 운행하고 계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도 로고스이신 예수님이 태초부터 계셨습니다.
  2. 신앙고백의 첫부분에서 우리 믿음의 근거를 성경이라고 정리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신앙은 그 성경에서 가르치는 바와 같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정립해야 합니다.
  3. 그러나 기독교 주변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교회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조를 통해 이들이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므로 이단이라고 선언할 수 있습니다. 즉 성경과 신조는 참 교회와 이단을 가르는 기준이 됩니다.
  4. 9조의 마지막 문단을 봅시다. “이 삼위일체 교리는 사도시대 이후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대주의, 이슬람, 거짓 그리스도인들과 이단들 즉, 말시온, 마니mani, 프락세아스, 사벨리우스, 사모사타의 바울, 아리우스와 같이 정통 교부들에 의해 정식으로 정죄받았던 사람들에 대항하여 참된 교회 안에서 항상 유지되고 보존되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교리에 관한 세 신경인 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아타나시우스 신경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또한 이 신조들에 일치하는 것으로서 고대교부들이 동의한 신조들도 받아들입니다.”
  5. 즉 기독교는 유애교, 이슬람,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거짓 그리스도인과 다릅니다.
  6. 또한, 삼위일체를 믿지 않거나 다르게 믿는 이단들과 구분됩니다.
  7. 말시온은 가장 최초의 이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죄하고 심판하는 무서운 구약의 하나님 대신 구원하시는 신약의 하나님을 선호하여 구약을 버리고 신약만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구약에 나타난 삼위일체 하나님을 다 믿습니다. 말시온 주의는 오늘날 신약을 중시하는 구원파로 계승됩니다.
  8. 마니교는 빛과 어둠이 함께 있다고 믿고 그 중에서 빛을 숭상하는 빛의 종교입니다. 어둠은 육신이며 악하고 약하고 더럽습니다. 빛은 영이고 선하고 강하고 거룩합니다. 이처럼 세상을 두가지로 나누고, 육신과 피와 죽음을 더럽게 여깁니다.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은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원론 마니교는 삼위일체 교리로 보면 간단히 이단임을 알 수 있습니다.
  9. 프락세아스는 예수님이 하나님이기만 하셨다고 믿습니다. 즉 한분 하나님이 위에 계셨다가 예수의 몸을 입고 죽은 척 하시고, 성령의 모습으로 오신다고 합니다. 그러면 결국 하나님은 한분 뿐입니다. 모양만 달리해서 입었다는 생각을 양태론이라고 부릅니다. 삼위일체를 설명하기 위해 자주 인용하는 얼음-물-수증기 비유나 아버지-남편-사장님 비유도 결국 양태론입니다. 주의해야 합니다.
  10. 사벨리우스 이단은 예수님이 신성만 가졌다고 합니다. 그러니 십자가에 달려도 아픈 척을 한 것이지 하나도 아프지 않은 셈이 됩니다. 반대로 사모사타의 바울은 예수님이 인성만 가졌다고 합니다. 즉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은 사람 부처 처럼 도를 깨친 인간에 불과합니다. 몰몬교도 예수님을 완전한 인간으로 보고, 그 본을 따르려 합니다.
  11. 몰몬교는 조셉스미스가 기성 교회는 썩었으니 교회를 가지말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 시작되었다. 거룩한 교회로 모이라는 성경의 가르침과 다른 점에서도 이단인데, 천사의 말이라 할 지라도 성경과 배치되면 믿어서는 안됩니다. 그 뒤 중혼과 미성년자와 결혼하는 것, 살인 폭력 등 사회적이고 윤리적으로 드러난 문제는 사회적 윤리적으로 이단으로 심판할 만한 문제입니다.
  12. 아리우스는 예수님을 성부가 만든 피조물이라 합니다. 만들어진 신은 신이 아니라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부가 성자를 ‘낳았다’고 하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왔다’고 표현합니다.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13. 이단은 여러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지만, 삼위일체 교리만 대입해도 대부분의 이단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이름 그대로 성부만 인정하는 유일신교 이므로 이단입니다. 통일교와 정명석과 신천지는 예수님은 위대한 선지자이지만 결국 실패한 인간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다시 새로운 진짜 선지자를 보냈으니 그가 바로, 문선명, 정명석 혹은 이만희라고 합니다. 이들 종교는 다른 문제도 많지만, 최소한 삼위일체로만 보더라도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지 않는 이들 종교는 기독교와 관계없는 이단입니다.
  14. 성탄절에 우리는 성자에게만 초점을 맞추지는 않습니까? 아들을 보내신 성부가 계십니다. 잉태하게 하신 성령님도 기억합시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섬깁니다.
  15. (갈라디아서 1: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제 8 조 기독교는 유일신 종교가 아닙니다.

제 8 조 하나님은 본질상 한분이시나, 세 위격으로 구별되신다
God is One in Essence, yet Distinguished in Three Persons
우리는 이 진리와 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오직 한 분 하나님을 믿으니,1 그분은 본질상 한 분one single essence이시며, 세 위격three persons이시고, 그의 비공유적 속성incommunicable properties에 의해 실제로really, 참으로truly, 영원히eternally 구별되는distinct 성부the Father, 성자the Son, 성령the Holy Spirit이십니다.2 성부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원인cause이시며, 기원orgin이시며, 시작beginning이십니다.3 성자는 말씀the Word이시고, 지혜이시며, 성부의 형상image of the Father이십니다.4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는proceeds from 영원한 능력power과 권능might이십니다.5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구별에 의하여 셋으로 나누이지divided 않으시는데, 왜냐하면 성경이 우리에게 성부, 성자, 성령이 각각 그 인격을 가진 존재로서, 각자의 구별된 특성으로distinguished by Their properties 구분되어짐에도 불구하고 이 세 위격이 오직 한 분 하나님임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부는 성자가 아니시며, 성자는 성부가 아니시며, 마찬가지로 성령도 성부가 아니고 성자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구별된 세 위격들은 나누이지 않고, 섞이지 않습니다not divided, nor intermixed. 왜냐하면 성부는 우리의 살flesh과 피blood를 취하지 않으셨고 성령도 그러하시나, 오직 성자만이 취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부는 그의 아들 없이,6 또는 그의 성령 없이 계신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셋은 본질상 동일한 한 분in one and the same essence이시며 영원히 동등equal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세 위격들은 모두 진리truth와 능력power과 선함goodness과 긍휼mercy에 있어서 처음도 아니요 나중도 아니며 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1 고전 8:4-6
2 마 3:16-17; 28:19
3 엡 3:14-15
4 잠 8:22-31; 요 1:14; 5:17-26; 고전 1:24; 골 1:15-20; 히 1:3; 계 19:13
5 요 15:26
6 미 5:2; 요 1:1-2

모든 종교는 각자 믿는 신조가 있습니다. 불교는 그 신조대로 신이 없다 하고, 이슬람과 유대교의 신조에 따르면 그들이 믿는 신은 하나가 있습니다. 힌두교등 어떤 종교는 많은 신을 믿으므로 다신교라고 합니다. 기독교는 이 중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유대교나 이슬람교로부터는 신이 셋이 있다고 믿는 다신교 취급을 받습니다. 한편 힌두교는 결국 일체를 믿는 기독교를 유대교나 이슬람교처럼 유일신 믿는 종교로 취급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본질 안에 세 위격이 있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 믿음은 기독교의 신조에 잘 요약되었습니다. 교파 및 교단에 관계없이 세계의 기독교가 공통적으로 믿는 중심 신앙을 요약한 것이 신조이며 중요한 세가지 기독교 공통신조가 있습니다. 세가지 신조란 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아타나시우스 신조입니다.

이 신조를 둘로 요약하자면, 결국 삼위일체 하나님과,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 입니다. 사도신경에는 이 두 주제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초기의 신조를 나중에 더 많이 요약한 것이 사도신경이기 때문에 함축적이고 가르치기 더 쉽지만, 너무 많이 생략되었습니다. 그래서 니케아 신경과 아타나시우스 신조도 함께 고백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이 세가지 신조의 중심 내용 즉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이 신이시며 인간이심을 믿는다는 것이 우리가 믿는 신에 대한 기독교의 중심 신앙입니다.

즉, 우리는 일신교가 아닙니다. 예수교도 아니고, 하나님교도 아니고, 성령교도 아닙니다. 삼위일체이셔서 성부 성자 성령으로 오시는 한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 애매한 위치가 바로 기독교의 정체성입니다.

제 7 조 성경과 교회를 평가하며 읽으십시오.

제 7 조 성경의 충족성 The Sufficiency of Holy Scripture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담고 있으며, 또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 믿어야 할 모든 것을 충분히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예배의 전체 방식the whole manner of worship이 성경 안에 충분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성경에서 가르침을 받는 것 외에 다른 것을 가르치는 것은 심지어 사도라 할지라도 그 누구도 불법입니다unlawful.2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바대로,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불법입니다(갈 1:8).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을 더하거나 빼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인해서(신 12:32),3 성경의 교리는 모든 면에서 가장 완전하고 완벽한 것임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4 우리는 제 아무리 거룩한 사람의 기록이라 할지라도, 인간이 쓴 모든 저작에 대하여 신성한 말씀the divine Scriptures과 동등한 가치value를 가진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관습custom이나, 위대한 다수의 견해the great multitude나, 고대의 유풍antiquity, 시대와 사람의 계승succession, 공의회councils나, 법령 혹은 규칙decrees or statutes 등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진리와 동등한 가치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무엇보다도 우선하며,5 모든 사람들은 다 스스로 속이는 자liars이고, 입김breath보다 가볍기 때문입니다(시 62:9).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요한이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요일 4:1)하고, 또한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요이 1:10)고 우리에게 가르쳐 준 바대로, 이 절대무오한 규범infallible rule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하여 배격reject해야 합니다.6

1 딤후 3:16-17; 벧전 1:10-12
2 고전 15:2; 딤전 1:3
3 신 4:2; 잠 30:6; 행 26:22; 고전 4:6; 계 22:18-19
4 시 19:7; 요 15:15; 행 18:28; 20:27; 롬 15:4
5 막 7:7-9; 행 4:19; 골 2:8; 요일 2:19
6 신 4:5-6; 사 8:20; 고전 3:11; 엡 4:4-6; 살후 2:2; 딤후 3:14-15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장로의 유전을 우선시하는 태도에 질리셨습니다.

우리는 제 아무리 거룩한 사람의 기록이라 할지라도, 인간이 쓴 모든 저작에 대하여 신성한 말씀the divine Scriptures과 동등한 가치value를 가진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관습custom이나, 위대한 다수의 견해the great multitude나, 고대의 유풍antiquity, 시대와 사람의 계승succession, 공의회councils나, 법령 혹은 규칙decrees or statutes 등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진리와 동등한 가치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에도 우리 주변에는 성경외에도 많은 거룩한 문서와 신령한 규칙, 도움이 되는 습관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도, 설령 신앙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보여도, 성경의 진리와 동등한 가치를 매겨서는 안됩니다.

물론 바리새인의 규칙도 다 이유가 있고 나름 쓸모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하나님의 원래 뜻마저 왜곡할 정도로 장로의 유전과 규칙을 높였습니다. 이를 예수님이 꾸짖으셨습니다.

중세 1000년이 다 어두운 것이 아니고, 1200년경부터 더욱 신비와 전설로 점철된 이야기들이 성경의 권위를 넘어서는 진리로 받아들여지면서, 1500년경 종교개혁을 촉발시켰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거부한 것은 카톨릭의 모든 교훈과 전통이 아니라, 성경 진리를 넘어서 심하게 왜곡된 사람들의 전통이었습니다. 중세 교인들의 저하된 비평능력이 결국 교회분열을 낳았습니다.

오늘날 어떤 신자는 성경의 권위와 맞먹는 권위를 따로 두고 있습니다. 자기교회 중심주의가 한 예입니다. 세상 다른 형제교회들이 어떻게 예배하고 사는지 관심이 없고, 자기 교회에서 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프로그램으로 믿고 의지합니다. 순진하고 시야가 좁은 생각입니다. 자기가 경험한 것이 전부인줄 압니다. 대형교회에 다니는 성도일수록 이런 자긍심이 괜히 드러나 보입니다. 세상 교회는 다 죽어가는데 자기 교회만 새롭고 능력있는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복음을 전한다고 선전하는 마케팅 전략에 세뇌된 분들이 많습니다. 담임목사도 사람이므로 틀리거나 부족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자기 교회의 담임목사의 말을 철썩같이 믿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의리있는 자세이지만, 성경보다 더 가치를 두는 위험한 일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목회자의 설교를 덮어 놓고 믿는 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지 아닌지 따져보면서 고민하고 비평하며 들어야 합니다. 따지고 보면 좋아하는 목사님이란, 방송에 나온 분, 어찌 되었건 성도수가 많고 교회가 커서 그 이유로 이런저런 감투 쓰신 분, 유튜브 알고리즘이 알려준 링크뭐 이런 것에 불과합니다. 흔히 알려진 어떤 교회, 누구 목사 등이 여러분이 선호하는 목사입니다. 조회수와 성도수. 숫자에 현혹되지 말고 진리를 진실되게 전하는 참목자의 음성을 구별하십시오.

어떤 능력 많이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역자가 하는 말을 믿지 마십시오. 그 예언에 겁 먹거나, 신뢰하지 마십시오.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사람의 예언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예언의 은사는 점쟁이의 말처럼 사용되어서도 안되고 받아들여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어떤 능력많은 사람을 통해서 주어지는 경우도 없지 않겠지만, 하나님의 성경으로 말하십니다. 그러니 그 예언이라고 주는 말을 그대로 받지 말고, 성경의 진리에 비추어서 귀 기울일 가치가 있는지 따져야 합니다. 그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그 예언이 사실이고 제가 들어야 할 경고라면, 저에게도 직접 말씀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중에 알려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예언과 자기암시, 느낌이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상충된다면 귀 기울일 가치가 없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면 곧 체포될 것이라고 예언하던 예언자들이 있었습니다. 맞는 예언이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바울만이 이 체포는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받아 들여야 할 하나님의 뜻이며, 복음 전파를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피하지 않겠다며 주변 선지자들의 예언을 뿌리치고 예루살렘을 향해 갔습니다. 예언이 문제가 아니고 그 예언을 성경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바울은 이 해석하는 능력이 남달랐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결단으로 결국 복음은 로마까지 이르게 됩니다.

성경을 비롯하여 외경과 신앙서적과 많은 참고서적을 읽고 또 읽으십시오. 말씀을 분별하는 분별력과 비판력을 기르기 위함입니다. 어느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드러내는 지 깨달아서 그 뜻을 준행하는 실력을 기릅시다.

요한1서 4장 1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 영이나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갔기 때문입니다.

제 6 조 외경을 읽읍시다

제 6 조 정경과 외경의 차이점
The Difference Between the Canonical and Apocryphal Books
우리는 외경들the apocryphal 즉, 에스드라3, 4서와 토비트, 유딧서,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에스더서의 부록, 아사랴의 기도, 불구덩이 속의 세 소년 찬미서, 수산나, 벨과 용, 므낫세의 기도, 마카베오상하를 이 거룩한 책들과 구별합니다distinguish. 교회는 이 외경들이 정경과 일치하는 한에서만 읽을 수 있고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경들은 믿음이나 기독교에 대한 어떤 요점들을 확증하는 증거를 삼는데 있어서 어떠한 능력이나 권위를 갖지 못할 뿐 아니라, 더욱이 거룩한 책들의 권위를 실추시키는데detract 사용될 수 없습니다.

책에는 교과서와 참고서와 만화책이 있습니다. 이 중 성적향상에 도움되는 책은, 교과서와 참고서 입니다. 만화책을 경계해야 합니다. 물론 교과서가 가장 중요합니다. 시험 문제가 교과서 중심으로 나온다고 하지만 참고서를 보면 교과서를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참고서는 많을 수록 좋습니다.

교회에는 성경, 외경, 위경이 있습니다. 이중 신앙 성장에 도움이 되는 책은 성경과 외경입니다. (벨직 신앙고백 제 6조 “…일치하는 한에서 읽을 수 있고,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성경이 가장 중요합니다. 성경을 통해 구원 얻는 길을 알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참고서인 외경을 보며 교훈을 얻는 것은 권장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외경을 읽으며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물론 성경보다 외경의 권위를 더 높인다거나, 정경에는 없고, 외경에만 나오는 내용을 신앙의 일부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이 권위의 문제는 다음 조항에서 더 다루겠습니다.

말라기와 마태복음 사이의 400년 침묵기에 그리스의 알렉산더가 유대를 침략했습니다. 그리스는 우상을 세우고 성전 제사와 할례를 금하고 어기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이 박해에 저항하여 독립운동을 한 마카비 가문의 이야기, 성전을 되찾고 정결케하여 다시 개장한 수전절, 처음에는 멋진 신사의 나라처럼 인식되어 동맹을 맺은 로마 나라 소식, 등이 마카비서에 들어 있습니다. 외경 중의 하나인 마카비서를 통해 우리는 구약과 신약의 간격을 이해하고, 세계사 속에서 예수님의 위치를 정확히 알게 됩니다.

외경 중에는 수산나 이야기, 유디트 이야기 등 제법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전혀 감흥이 없는 책도 있습니다. 무어보다 성경 66권이 주는 것과 같은 영감과 감동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외경을 멀리해도 좋을까요?

집에 참고서 한 권도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쩔수 없이 교과서만 읽는 학생보다 다양한 참고서도 읽는 학생의 성적이 더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녀들에게 참고서를 사주는 것 아닙니까?

신앙성장을 위해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외경도 읽어야 합니다. 대부분 개신교인은 외경의 존재도 모르고, 읽지 않습니다. 아니 본적도 없습니다. 천주교인은 구약 외경이 아예 성경책에 들어 있습니다. 성경을 읽는 빈도와 열정이 동일하다면, 참고서인 외경을 가지고 다니면서 가끔씩 접하게 되는 천주교인과 아예 외경을 본 적도 없는 개신교인 중 누가 더 성경을 잘 이해하겠습니까?

우리가 성경을 제일 잘 안다는 오만을 벗어버리고, 다양한 외경과 참고문헌을 접하여 성경의 진리를 더 잘 알아가기에 힘씁시다. 교회는 이 외경들이 정경과 일치하는 한에서만 “읽을 수 있고”,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제 5 조 성경의 권위 The Authority of Holy Scripture

제 5 조 성경의 권위 The Authority of Holy Scripture
우리는 이 모든 책들, 그리고 오직 이 책들만을 우리의 믿음을 구성하고regulation 기초하고foundation 확증하는confirmation 거룩한 정경holy and canonical으로1 받아들입니다.2 우리는 이 책들에 포함된 모든 것들에 대하여 어떠한 의심없이 믿습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받아들이고 승인했기receives and approves 때문이 아니라, 특별히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heart 속에서 그 책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며,3 또한 그 안에 담겨진 내용들이 그 자체로 증거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심지어 눈 먼 자the blind라 할지라도 그 책들 안에 예언된 모든 것들이 성취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4

1 딤후 3:16-17
2 살전 2:13
3 고전 12:3; 요일 4:6; 5:7
4 신 18:21-22; 왕상 22:28; 렘 28:9; 겔 33:33

1-1. 구약성경 정경화 – 구약은 70년 얌니아 회의에서 정경이 확정되었습니다. 이미 오래동안 유대교는 구약성경을 읽고 기록하고 암송했습니다. 그러나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추방된 이스라엘 민족은 온 세상으로 퍼져갔습니다. 문화 지역 언어가 다른 곳에 가서 사는 유대인 공동체들이 많아짐에 따라, 공식적으로 구약성경의 목록을 한번 정리해야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얌니아 회의 에서 정해서 성경이 된 것이 아니고, 이미 있는 성경을 회의에서 확인 한 것입니다.

만약 우리 인간이 모여서 교회에 유리한 것만 골라서 성경으로 만들자고 했다면, 구약성경에서 골치아픈 내용들, 부도덕한 내용들은 다 빼버렸을 지 모릅니다. 요즘 시대에 보기에는 적절치 않게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잔인하게 보이는 표현은 다 삭제했겠지만, 우리 선배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성경을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알고 받아들였습니다. 이들이 한 것은, 진짜 성경과 성경이 아닌 참고서인 외경 및 가짜 성경들을 분리한 것입니다.

1-2. 신약성경 정경화 – 신약은 막 예수님 사후 사도들에 의해 한창 기록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사후 10년쯤 지나서 아마도 야고보서나 혹은 바울이 갈라디아서가 가장 먼저 쓰여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이 100년 쯤에 마지막으로 써졌습니다. 교회가 각지에 세워짐에 따라, 교회를 지도할 사도들의 책들이 널리 읽혔으며, 이 책들은 더 많은 교회들에서 돌려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도들이 죽은 뒤에, 사도의 제자들이 교회를 다스리고 가르쳤습니다. 이들을 속사도라고 부릅니다. 속사도가 죽은 다음에 교회를 지도한 사람을 교부라고 부릅니다. 속사도와 교부시대에도 신약 27권이 교회에서 성경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교회가 성장하면서 다양한 위조문서가 등장합니다. 당시 유행하던 영지주의 철학의 생각으로 적혀있고 또 책의 이름을 어떤 예수님의 제자가 썼다고 주장하는 책들도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교회는 어떤 책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어떤 책이 가짜 책인지 쉽게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교회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지로 뻗어나가서 다양한 인종과 언어의 민족들이 한 신앙을 공유하게 되자 신약성경의 목록을 정리해 줄 필요가 더 커졌습니다. 그래서 397년 카르타고 회의에서 27권 신약 목록을 확정했습니다. 이 때, 알렉산드리아 감독이던 아타나시우스가 27권을 제시한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성경으로 받은 책은 물론 그 내용이 영감을 주는 책이어야 하고, 사도가 쓰거나, 최소한 예수님을 본 사람이나 사도의 제자가 쓴 책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사도의 이름을 도용한 가짜 책들이 등장하여 혼란을 줍니다. 물론 훈련된 눈으로는 너무 쉽게 구분할 수 있지만, 초신자들 사이에는 혼선이 빚어졌습니다. 그래서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여서 신약 정경 27권의 목록을 공표합니다. 이때 정경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고, 이미 교회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겨지고 성경으로 읽힌 책들의 목록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입니다.

2. 외경 참고서 – 성경에는 물론 외경이 있습니다. 이집트 콥틱교회나, 정교회 일부는, 헤르메스 목자의 편지, 디다케 등 을 추가로 정경으로 받기도 합니다. 시리아와 이디오피아 등 일부 특정지역 교회에서 외경을 받지만, 대부분은 신약 27권을 졍경으로 받습니다. 이 책들은 1세기 이후 2세기 에 쓴 책인데, 사도들이 죽은 뒤에 등장한 2세기 교회의 지도자를 속사도 혹은 교부라고 부르는데, 이 때 쓰여진 책입니다.

3. 허위문서 위경 – 또 위경, 가짜 성경이 있습니다. 도마복음서, 베드로계시록 등 이름부터가 사도의 권위를 빙자한 것입니다. 내용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새를 죽였다가 살렸다거나 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 들었습니다. 영지주의 영향을 받아 영은 거룩하고, 육은 더럽다는 세계관이 들었습니다. 위경은 그 수준이 한참 떨어지므로 읽어보면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한 때 한국 기독교서점가에서 가장 유명했던 위경은 빌라도의 고백입니다. 예수님을 죽인 빌라도가 결국 복음을 발견하고 자기 죄를 뉘우치며, 신자가 되었다는 감동적인 내용입니다. 근데 너무 드라마처럼 딱 들어맞고, 너무 감동적이지만 이는 성경을 기초로 쓴 감동소설에 불과합니다.

감동적이라고 모든 책이 성경은 아닙니다. 감동과 영감을 구분하십시오. 하나님의 숨길로 쓰여진 성경은 감동을 주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를 교훈하고 책망과 바르게하고 의로 교육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건강하게 하는 쓴 약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십시오. 듣고 싶은 이야기만 골라 듣지 말고, 모든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정경을 읽고, 듣고, 순종하십시오.

마 20:1-16 천국은 불공평한가?

포도원 일꾼의 비유는 종종 혼란스럽다. 9시부터 일한 종과, 12시, 3시, 5시부터 일한 종이 같은 돈을 받는다. 9시간 일한 종과 한시간 일한 종이 같은 품삯을 받는 것을 보고 불공정하다고 불평한다.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주님의 대답을 들어보니, 일리 있다. 공평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를 사회경제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면 오류에 빠진다. 예를 들면 김재수 교수의 경제학적 해석은 지엽적인 사항에 빠져 본지를 놓친 셈이다. 그는 이 비유를 풀이하며,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은혜를 베푸신다’는 ‘주인 관점’의 일반적인 해석 대신 ‘일꾼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고 제안했다. 품꾼은 농장주가 정해 주는 대로 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고, 임금 협상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을’이었다는 것이다’ (뉴스앤조이) 다른 방식으로 억지로 주인을 변호할 필요 없다. 천국에 대한 비유이므로 비유의 세부사항에 휘둘리지 말고 비유가 가리키는 주제에 집중하면 좋겠다.

태어나면서부터 교회에 나온 사람이 있다. 15살에 주님을 만나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도 있다. 25살, 35살, 45살에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과, 55, 65살에 주를 만난 사람이 있다. 심지어 75살 이후 죽기 직전에 주를 만난 사람이 있다. 평생 주일 오전을 예배 드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과 교회에서 살며,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 하나님 곁에 있던 사람은 아주 불행하고, 세상에서 맘대로 살다가 죽기 직전 만나서 몇시간만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은 가장 행복한가? 아니다, 오랜 신앙생활을 하며 받음 복이 크다. 그러므로, 더 먼저 믿었다고 억울할 것 없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포도원 일꾼 비유를 배에서 구조하는 비유로 바꾸어 보자. 배에서 물에 빠졌는데, 9시에 일찍 구출된 사람과, 아홉시간 뒤에 구출 된 사람이 있다고 하자. 먼저 구출된 사람은 배 안에서 커피믹스를 마시면서 구출과정을 지켜본다. 마지막으로 오래동안 바다 위에 떠서 저체온증으로 고생하다 새파랗게 되어 구출된 사람에게 담요도 덮어주고, 온열시트도 꽂아주고, 수액주사도 놓는 것을 보고서, 왜 나는 수액주사를 안주느냐, 같은 세금을 내는데, 왜 나는 적십자 담요 안주느냐? 구조가 불공평하다 불평할 사람은 없다.

우선 하나님 곁에 있는 것이 불행하고, 율법을 지키는 삶이 고통스럽다는 전제를 바로잡아야 한다.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 있고, 주의 궁전에서의 하루가 세상에서 천날보다 낫다. 먼저 구조된 사람은 하나님 곁에서 복을 누릴 시간이 많아 받은 은혜가 더 크고, 성장할 시간이 많아서 감사거리가 많고 행복하다. 늦게 구조된 사람은, 이 땅에서 창조주를 만나지 못한 채 혼자서 고독 근심 걱정 불안 염려로 평생을 보내다 마지막에 겨우 구조된 것이다. 결국 구조된 모두가 행복하지만, 먼저 온 사람은 더욱 복되다.

집나가서 고생하다 거지꼴로 돌아온 둘째는 행복하고, 아버지 집에서 꾸준히 일하던 첫째는 불행한가? 첫째 아들이 더 행복한 것을 잊지 말자. 그런데 그 이야기에서도 첫째아들은 불평했다. 불평하지 말자. 주의 궁전에서 문지기가 되는 것이 차라리 더 행복하다는 다윗의 고백이 우리 고백이 되게 하자.

(마 20:1-16) 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5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7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