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꾼이 좋아하는 기적이 있다. 마 17장의 기적은 돈을 낚는 기적은 잘 알려지지 않는 기적이다. 성전세 반세겔을 내야 하므로, 베드로를 시켜 낚시하여 물고기를 잡게 한다. 하필 그 물고기 입에 세겔 동전이 물려 있었고, 이를 가져다 성전세를 내었다는 기적이다.

통일교, JMS 이단 등에서는 이를 기적이라고는 믿을 수 없고 대신 비유풀이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베드로가 사람낚는 어부가 되리라는 말씀에서 낚시질은 전도행위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도 베드로가 나가서 한 사람을 전도하였고, 감동받은 피전도자가 기꺼이 한세겔 성전세를 내주었다고 해석한다. 이런 해석을 신박하다고 여기고 이단에 현혹되지 않기 바란다. 주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말 장난일 뿐이다.

풍랑을 잠재우시는 분이 고작 한세겔 물고기 입에서 꺼낼수 없겠는가? 근데 사실 기적보다 중요한 것은 기적을 일으키신 동기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 들어가는데 돈을 낼 이유가 없다. 그러나 주님은 오해 받지 않게 하기 위하여 바다 물고기 고기 입에서 성전세를 꺼내어 내게 하신다. 그리스도인은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의 자녀다. 모든 것이 아버지 것이니, 아들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무것이나 가지고, 아무데나 들어가면 안된다.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땅에선 우리의 행동으로 다른 사람이 실족하거나, 혹은 오해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호텔에 가서는 정당한 돈을 주고 자고, 물건을 살 때 결제하는 이유다. 심지어 다른 교회를 방문해서 장소를 이용할 때도 폐 끼치지 않도록 절차를 거치고 필요한 비용을 내야 한다.

나는 주의 일을 하니까, 당연하게 대접받아야 한다는 듯이 행동하는 경우도 오해할만한 행동이다. 같은 주안의 신자이므로 예의없이 행동하는 것도 폐가 된다. 하나님이 참 신이지만, 절에 가서 무너져라 외치는 것은 종교전쟁을 시작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이 무례한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이 실족했다.

예수님도 이 땅에서 사실 때, 다른 사람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조심하셨다. 이 땅에서 모범이 되신 주님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의 마음에 실망주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며 살자.

다른 사람을 의식하며 사는 일이 쉽지 않다. 힘도 들고 돈도 들어야 한다. 그러나 물고기 입에서 한 세겔을 찾아 주신 하나님이, 매순간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폐 끼치며 살지 않도록 우리를 지키시고, 하나님께서 직접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실 것이다.

마 17: 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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