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베드로의 당황을 이해할 수 있다. 기적과 좋은 말씀을 듣고 마침내 신앙고백한 참이다. 그러나 이 때로부터 주님은 십자가에 대해 이야기 하셨다. 주님이 지시고 나중에는 제자들도 질 십자가다.

24절은 전혀 기대하지 않은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내용에선 주를 믿는 것이 목숨까지 내어 놓는 위험천만한 일인가 하며 쫄게 된다. 목숨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알겠는데, 먼저 주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 놓아야 찾게 된단다. 아무리 갚아 주신다고 하지만 날벼락 같은 말씀이다.

신앙은 잔잔한 호수가 물놀이가 아니다. 교회에 처음 가는 날이 내겐 강을 건너는 결단의 날이었다. 평온한 삶이 깨지고 새로운 모험으로 들어가는 구도자의 첫날이었다. 믿음이 생기고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기엔 내 운명을 건 결단이 필요했다. 성경공부도 재미있었지만, 함께 나가서 전도하자고 할 때는 죽을 맛이었다. 창피하고 숨고 도망치고 싶었다. 나중에 신학교로 부르실 때는 한숨 쉬며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갔다. 전도사로 진행한 행사에서 많은 호응을 얻었지만 한 분은 크게 상처받았다고 해서 한동안 힘들었다. 부목사 생활, 개척교회 목사를 하며 정기적으로 환난과 고난을 통과한다. 주로 사람문제다. 생각하기에 따라 죽을 만큼 힘든 일을 종종 만난다. 때론 맘고생이 몸의 질병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목사가 아니었으면 겪지 않았을, 아니 애초에 예수를 만나지 않았다면 당하지 않았을 고난이다. 잘못 믿은 거였나?

예수의 제자가 16장을 넘어가는 과정이 이토록 힘들다. 신앙고백과 세례와, 안수와 어떤 프로그램 수료와 직분과 경험으로 끝이 아니다. 그 이후의 제자의 삶에 따라오는 희생과 섬김 고난과 죽을 정도의 맘고생을 만나야 한다. 이것이 제자들이 짊어질 십자가이며 따라가야 하는 십자가의 길이다.

예수 믿고 날마다 행복, 감정의 고양, 재물의 축복, 가정의 평화를 기대하는 것은 초보신앙이다. 16장 이전이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번영신학, 복을 구하는 기복신앙도 어떤 종류의 신앙일 수는 있지만, 신앙이라고 하더라도 마태복음 16장에 멈춤 신앙이다. 여기서 멈춰서는 안된다. 16장 이후로 성장하려면, 십자가도 져야 하는 제자의 삶을 배우고 받아들여야 한다.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르는 것이 제자의 삶이다. 주님이 십자가 길을 먼저 가셨으니, 제자도 십자가를 져야 한다. 주님이 부활하실 때, 그래야만, 제자도 부활할 것이다.

(빌 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Php 1:29) For it has been granted to you that for the sake of Christ you should not only believe in him but also suffer for his sake,

마 16: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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