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 여인 하나이 와서 귀신들린 딸을 고쳐달라 했을 때, 예수님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 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 즉 내 소명이 아니라고 대번 거절하신다. 심지어 ‘개들도 부스러기는 먹지 않느냐’는 거듭된 간청을 듣고 나서야 고쳐 주신다.
여인은 지나치게 비굴하고, 예수님은 전에없이 쌀쌀맞다. 왜 그러실까?
원래 예수님은 낮은 자와 함께 하셨다. 어린 주님은 말 구유에 눕히셨고, 동방의 이방 점술가와 들판의 낮은 목자들이 와서 경배했다. 변두리 나사렛에서 자라셨고, 제자들은 어부와 세리였다. 주님은 부자 권력자가 아닌, 병자와 여인들, 죄인과 함께 하셨다. 이것이 주님의 행동의 전형이었고, 이런 비주류적인 모습은 당대 주류 유대인에게 큰 충격이 되었다.
그런데 왜 주님은 하필 이 비주류 여인의 부탁은 들어주지 않으셨을까? 주님은 우선순위에 대해 말씀하신다. 3년 이라는 짧은 시간에, 주님은 제자를 만나 훈련시키고 복음을 선포하시며, 십자가를 지셔서 인간의 죄를 갚아 구원의 사역을 이루셔야 했다. 부족한 시간 중에,온갖 병자를 고치며 메시야인 표적을 보여주시기 위해 병자를 고치셨다. 병원을 차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구원하시려 오셨다.
구원의 우선 순위가 있다. 집중해야 할 사역이 있어서 거부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고쳐주신 것을 기억하자. 이 여인 뿐 아니라, 로마 백부장의 기도도 들어 주셨다. 백부장의 기도는 그의 종을 고쳐달라는 것이었다. 로마 이방인, 압제자 백부장, 그의 종의 병을 고치셨다. 사실 병자에게 손을 대는 것, 안식일에 고치시는 것, 사마리아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조차 터부시 되던 행위였따. 그럼에도 주님은 약자들을 가까이 하셨다. 이렇게 자상한 분이 시지만, 하나님의 일을 하는 때에, 단지 전략상 이유로 먼저 유대인들과의 대화에 집중하신 것이다. 이방인 전도는 오순절 후 오신 성령님과 함께 하는 제자들의 할 일이었다.
당시 상황을 다 고려하지 않고, 마태복음 15장 24절만 보고 쌀쌀맞은 예수님이 이방 여인의 간청을 물리치셨다고 오해한다. 예수님의 사역과 이스라엘의 사정을 살피면 오해가 풀린다. 사람들은 바울도 이런 식으로 오해한다. 여성들더러 교회에서 잠잠하고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했다며 이는 바울이 여성의 인권을 무시한 것이라 바울을 성토한다.
그러나 2000년 전, 시골 나라에서 여성인권, 노예해방, 빈부격차해소, 환경보호는 너무 먼 이야기다. 예수님과 바울의 소명과는 동떨어진 주제였다. 사실 중동은 지금도 여성의 인권이 보호받지 못한다. 노예해방, 여성인권이 보장된 것은 미국에서조차 불과 100년이 채 되지 못했다. 예수님 이후 1900년동안 거의 모든 남자들이 남성우월론자였고 인종차별주의자였다. 그런 세상이었다. 역사적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예수님과 바울을 성토하는 것은 부당하다.
비록 복음이 소개된 곳에는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고, 노예가 해방되고, 가난한 자가 존중받고 심지어 동물의 생명을 존중하는 유익이 나타난다 할 지라도, 이는 복음의 부수적 효과다. 먼저 복음이 전해져야 이 유익이 나타날 수 있다.
예수님과 바울의 소명은 먼저 하나님의 복음을 이 땅에 전하는 것이었다. 핍박받는 교회를 세욱고, 지키며, 가르쳐서 이 땅에 복음을 전하는 굳은 신앙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사도의 소명이었다. 사도가 소명 외의 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고 비난 하는 것은 부당하다.
교회의 우선순위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이 땅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인 신앙 공동체를 이곳에 세우는 것이다. 복음을 선포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며, 신자들을 교육하고 훈련하여 성장하게 한다. 불신자들의 곁으로 다가가 필요를 채우고 복음을 전하고 위로한다. 이 과정 중에 당연히 좋은 영향이 미칠 수 있겠다. 환경이 개선되고, 격차가 해소되고, 혜택이 많지 받지 못한 사람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교회의 우선순위는 복음전파와 하나님 나라의 일에 힘쓰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때로는 사양할 줄 알아야 한다. 우선순위에 먼저 집중하자. 내가 생명 안에 거하고, 가족이 살고, 이웃을 섬기며, 더 넓게 영향을 미쳐가는 순서다. 먼저 가까운 이웃에게 우리의 존재가 생명과 기쁨이 되게 하자. 그 후에 더 많은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돕는자가 되자. 할 수 있는 대로, 하나님의 명을 따라, 힘 닿는 대로 주의 나라와 이웃을 섬기자.
(마 15:21-28) 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